[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4·3’의 이름에 부쳐
입력 : 2024. 04. 03(수) 00: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한라일보] 정명(定名)이란 임시로 이름을 붙였다가 확정적인 이름으로 명명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를 '개똥이'나 '순둥이'이라 했다가 이름을 짓고 철수, 순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렇다. 대상이나 상황은 정명이 된 후로부터 그 의의를 실질적으로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4·3'이 오늘 76주년을 맞고 있지만 제주도민들이 공감하고 역사 인식으로 합의할 수 있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추념일에 대통령의 참석 여부의 문제를 따진다는 것은 몹시도 따분한 일이다.

최근 총선 과정과 '4·3'관련 행사 등을 지켜보면서 '4·3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자'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제주도민과 희생자들을 위무한다는 의미에서 수긍하고 싶지만, 도대체 어떤 정신과 가치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명이 없는 상황이므로 그 정신과 가치란 말은 성립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명은 제주도민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소통이 가능한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그 의미가 있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그 정신과 가치를 논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또는 대선이든 제주에서는 늘 부르짖는 말이 '4·3'의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이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후보 누구라도 '4·3'을 말하지 않고는 도민 앞에 서지 못한다. 그런데 '4·3'에 대한 인식은 후보들이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 이는 도민들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상황을 체험하지 못한 60~70대 도민들의 인식에서조차 극과 극이다.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이라고도 하고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의 학살이라고도 한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제주 사회를 질시와 반목으로 왜곡할 수밖에 없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발발한 일련의 사건들을 '4·3'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대적 구분은 협의의 '4·3'이다. 왜냐하면 도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거니와 가장 중요한 정명도 되지 않았으므로 '4·3'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해야 옳다.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어린이와 함께 6명의 희생이 계기가 되어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5·10 남한 단독 총선 반대'로 '4·3'은 발발이 되었다.

'4·3' 발발의 계기로 본다면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이고 '한반도 조국 통일 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런 명명이라면 그 정신과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전쟁 전후 몹시도 어지러운 때에 마을 공동체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용수리 좌정준씨는 벗고 다니던 네 오누이를 두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역사와 우리말을 가르쳤던 고산리 고완봉 선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젖먹이 딸을 따뜻이 안아보지도 못하고, 사상을 검증한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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