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위선조차 상실된 시대
입력 : 2024. 02. 21(수) 00: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한라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KBS와의 대담에서 대통령의 배우자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박절하지 못하게 끊지 못한 것'이라며 '몰카 공작'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해명은 최고 권력자의 인식이 국민의 일반적 상식과 얼마나 다른지 그대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KBS 대담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서 67%가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대통령이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감싸는 동안 대통령 경호실은 R&D(연구개발) 예산 보강하라고 외치는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 나갔다. 사건 직후 대통령실과 여당은 사과는커녕 이 졸업생의 정치색을 문제 삼았다. 정부 여당의 논리라면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어만 발언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말이 된다. 이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죽 했으면 과거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윤 대통령의 대응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오겠는가.

캘리포니아 페리 앤더슨 교수(역사학)는 '악의적인 의도를 감추기 위해 악이 꾸며낸 가짜 미덕이 위선'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위선'마저 이용한다. 선거철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정치인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가짜 미덕'인지 '진짜 미덕'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이 정권의 행태를 보면 최소한의 위선마저 내팽개친 것 같다. 검찰을 호위 무사로 삼아 국민들을 겁박하다 보니 국민들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졸업식장에서 끌려간 카이스트 졸업생을 보면 국민들이 겁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조원의 R&D예산을 삭감한 당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아연할 수밖에 없다.

위선이 사라진 자리는 언제나 야만의 몫이었다. 히틀러가 그랬고, 이승만과 박정희가, 전두환이 그랬다. 야만적 권력은 위선의 가면마저 벗어버린다. 폭력적 권력의 민낯은 국민들을 위협한다. 하지만 스스로 맨얼굴을 드러낸 권력의 말로는 분명하다. 야만적 폭력 앞에서 국민은 권력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야만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5년 동안 위임된 한정된 권한일 뿐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 계승"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4·19혁명은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는 민주 혁명이었다. 대한민국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 시민의 저항은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배우자의 부정을 감싸는 권력의 불의가 계속된다면 저항의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결말을 알고 있지만 권력은 언제나 역사를 외면한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고 했던가. 그 외면의 끝이 멀지 않았다.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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