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사랑의 유통기한
입력 : 2023. 12. 22(금)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영화 '3일의 휴가'
[한라일보] 엄마는 나를 검색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엄마의 핸드폰으로 가야 할 식당을 찾다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제일 위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흔이 넘어 홀로 떨어져 사는 아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자영업자 겸 프리랜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궁금해하셨던 것 같다. 나름 살갑게 군다고 생각했지만 하루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지 않는 아들의 안위를 엄마는 그렇게 검색하고 있었다. 직업의 특성상 가끔 이름이 쓰인 글들을 웹상에서 볼 수 있어서 엄마는 좀 안도하는 것 같았다. 불혹의 나이에 심하게 앓았던 아들이 다시 일하면서 살 수 있을지를 내심 걱정했던 엄마에게 검색창은 안부를 아들의 안부를 묻지 않고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던 공간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마음이 찌르르했다.

육상효 감독이 연출한 '3일의 휴가'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3일의 휴가를 얻어 딸을 만나러 오는 이야기다. 장르로 치면 판타지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살아생전 엄마는 하나뿐인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딸의 공부와 성공을 위해 평생을 뒷바라지했던 엄마의 굴곡진 인생과 자신을 위해서라지만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던 외롭던 딸의 아픈 상처들이 포개어지는 작품이다. 눈물 콧물 쏙 빼는, 전형적인 한국형 신파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두 모녀의 각기 다른 마음을 파고들며 천천히 관객의 마음을 적셨다. '3일의 휴가'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게 태어나 누구보다 멀어질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두 존재에 다리를 놓는 영화에 가까웠다. 우리는 종종 영화 속 누군가의 삶을 쉽게 재단하곤 한다. 현실보다 억지스럽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면 요즘 감성에 맞지 않는 소재라고 외면하기도 한다. 담백하고 쿨한, 깔끔하고 산뜻한 캐릭터의 사이다형 서사를 원하는 관객들에게 '3일의 휴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가난하고 무지한 엄마와 똑똑하지만 무뚝뚝한 딸이라는 단순한 캐릭터 설명은 아마도 큰 장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꺼풀을 벗겨내는 수고에 정성을 들이는 영화다. 누군가의 삶을 골몰하게 들여다본 묘사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처럼 성실하고 생생하다.

'3일의 휴가' 속 딸은 엄마의 죽음 이후 외국 대학 교수 자리를 고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들을 재현하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일순간 잃어버린 이들은 잊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때로는 자기 앞의 생을 멈추곤 한다. 되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은 그 시간이 남겼던 흔적들로 마법처럼 재현되곤 하는데 '3일의 휴가'는 이 애틋한 감각을 영상으로 훌륭하게 구현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분할 화면을 통해 엄마가 만들어주던 무가 들어간 만두를 만드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수없이 많은 실패 끝에 끝내 발굴의 순간으로 가 닿고 전화를 받지 않는 딸의 컬러링에 흘러나오던 팝송을 따라 부를 정도로 익숙해지는 엄마의 모습은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잔상을 남긴다. '3일의 휴가' 속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생과 사의 벽 앞에서 두 사람이 종종 한 장면 안에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담긴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다른 생을 살고 다른 곳에 놓인 이들이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완전한 소통을, 정확한 사랑을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인간은 개별 존재로 각각의 불완전함으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삶은 한 명의 움직임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이 한 명의 인생을 들고 난다. 그 삐걱거리는 출입이 한 인간의 감각과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살아있게 한다. 닮았지만 닮지 않은 이에게서 닳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받게 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식지 않게 하는 마법 같은 연료일 것이다.

연재하고 있는 이 원고는 얼마 전부터 포털 서비스의 제휴가 종료되어 검색으로 엄마는 이 글을 읽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신문사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걱정은 늘 사랑에서 시작된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은 엄마들이 기쁨으로 채우고 있을 사랑의 저장고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길어 올려져 자식들의 냉장고를 차지할 소분된 사랑의 모양들도 떠올렸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상하지 않은 마음의 미각뿐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624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