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왕벚'을 부르다] (5)일본을 가다 ②
입력 : 2023. 05. 04(목) 00:00수정 : 2023. 05. 04(목) 22:25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에도 소메이촌서 왕벚나무 첫 보급"… 실체는 불분명
옛 소메이촌(현재 일본 도쿄 도시마구 고마고메)에 심어진 왕벚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살리기 위해 80년 전부터 다시 심어진 이 지역 왕벚나무는 주민, 도시마구 등에 의해 보존·관리되며 마을의 상징이 되고 있다. 강희만기자
옛 소메이촌 '소메이요시노 발상지' 등으로 불려
일본 학자 "마사다케가 교배·재배 관여" 추정에도
기원에 대해선 '설'만… 인위 교잡 등도 확인 안돼


[한라일보] 지난달 12일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고마고메. 스가모역에서 걸어서 20분 내외에 닿는 지역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소메이요시노마을'(染井よしの町)이라는 표시가 보였습니다.

마을에 뿌리 내린 왕벚나무는 이곳의 상징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대, 공습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일으키기 위해 다시 심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주민들과 도시마구는 이를 보존·관리하며 마을만의 경관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왕벚나무를 부르는 말인 '소메이요시노'의 유래를 얘기할 때 이곳을 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곳입니다. 일본에서 왕벚나무가 처음 보급된 지역으로 '소메이요시노의 고향', '소메이요시노의 발상지'라고도 불립니다. 왕벚나무의 일본 이름인 '소메이요시노'의 '소메이'는 이 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식목 장인들이 모여 살았던 옛 소메이촌을 표현한 그림. 그 오른쪽에 '소메이요시노의 고향'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강희만기자
식목 장인 모여 살던 '소메이촌'

일본 에도(현 도쿄)의 소메이무라(染井村, 이하 소메이촌)는 식목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개정 발간된 책자 '스가모 사적 산책'에는 그 배경이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1603년 에도 개막 이후, 에도의 거리에는 넓은 부지를 갖춘 다이묘 저택이 여럿 생겨났다. 전란의 세상이 끝나고 태평한 시대가 정착되면서 다이묘들은 하나같이 저택 안에 정원을 만들고, 그 우아함을 경쟁하게 됐다. 그런 다이묘 저택의 정원 조경과 관리에 종사한 것은 바로 인근 농민들이었다." 소메이촌의 농민들이 언제부턴가 다이묘 저택의 '정원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에도 제일의 정원수 장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 돼 갔다는 겁니다.

소메이촌에선 품종 교배나 연구도 진행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중심에는 에도 제일의 정원사로 알려진 '이토 이헤이'가 있습니다. 이는 한 인물이 아니라 가계 대대로 이어져 온 이름인데, 그 중에서도 '마사다케'가 주목됩니다. 일본 학자인 이와사키 후미오가 이토 이헤이의 가계도를 조사해 '왕벚나무를 만든 사람'으로 가리킨 인물입니다. 1991년 발간된 쓰쿠바대학농림센터 연구보고서에 실린 후미오의 '왕벚나무와 관련 종의 야생 상태, 그리고 왕벚나무의 발생지'에는 "이토 이헤이 가문이 1720년 이후 벚꽃 묘목을 재배한 것은 확실하다", "마사다케가 소메이요시노의 교배와 재배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돼 있습니다.

옛 소메이촌에서 왕벚나무를 처음 보급한 것으로 알려지는 이토 마사다케의 묘비. 고마고메 지역의 '서복사'라는 절 안에 있다. 강희만기자
"왕벚나무 처음 보급한 건 맞지만…"

취재팀이 찾은 고마고메의 '서복사'(西福寺)라는 절에는 마사다케를 기리는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동경도교육위원회는 1993년 이곳에 '이토 마사다케 묘'라는 표지판을 세워 그의 업적을 알리고 있습니다. 취재팀을 이곳으로 안내한 '소메이요시노 사쿠라를 지키는 모임'의 대표 세키네 하루오 씨는 "마사다케는 원예가로서 종자 개발 연구도 하고 관련 책도 남겼다"면서 "소메이요시노를 발견해 보급한 것도 마사다케"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왕벚나무 기원에 대한 설에 대해선 "정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키네 씨는 "옛 소메이촌에서 소메이요시노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에 대해선 두 개의 설이 있다. 일본 이즈에 피어 있던 것을 희귀하다 생각해 가져왔다는 것과 그곳에서 에도히간(올벚나무)과 오시마 자쿠라(왜벚나무), 두 가지를 가져와 만든 게 소메이요시노라는 설"이라면서 "이 설이 확실하진 않다"고 재차 말했습니다. 소메이촌에서 일본 전역으로 보급된 왕벚나무가 실제 자생하던 것을 재배해 육성했는지, 두 종을 인위 교배해서 만든 품종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세키네 씨가 마사다케를 소메이요시노의 '발견자'라고 보는 것도 그 탄생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마을주민으로 구성된 '소메이요시노 사쿠라를 지키는 모임'의 대표 세키네 하루오 씨가 본보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일본 안에서 이를 밝히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옛 소메이촌에서 '요시노 벚나무(요시노 자쿠라)'로 판매됐던 왕벚나무가 1900년 일본에서 '소메이요시노'라는 이름을 얻고 이듬해 정식 학명으로 학계에 등장한 이후에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기원에는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그 실체가 불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다케나카가 1962년 쓴 '사쿠라의 연구 -소메이요시노의 기원'에는 그 이유가 언급돼 있습니다.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소메이요시노의 이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소메이의 꽃집을 방문했는데, 이것을 내다파는 곳도 없었고, 옛일을 알고 있는 노인들은 모두 사망해버려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세간 풍설로는 이즈의 오오시마섬이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라고 전해졌다. 이에 필자 또한 1958년, 1960년, 1962년 세 번 오오시마섬에 건너가 조사를 했지만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것을 조금도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김지은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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