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숲은 사글사글한 직박구리를 사랑한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6. 23(목) 00:00
숲길을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번영로에서 이어지는 남조로(남원읍과 조천읍을 잇는 도로)에는 숲을 매개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즐비하다. 제주산림치유연구소(파파빌레)를 비롯해 교래곶자왈 휴양림, 에코랜드, 삼다수 숲길, 붉은오름 휴양림, 사려니숲길, 물영아리 숲길, 마흐니숲길 등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주에서 가장 긴 천미천이 남조로를 횡단한다.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좋고 다른 관광지에 비해 주차 공간이 넓어서인지 제주에 피서 온 관광객들이 바다 대신에 이곳을 찾는다. 자동차들이 빽빽이 주차된 모습을 보고 이 일대에서 연일 축제 행사가 진행되는 줄로 착각한다. 남녀노소가 단체와 가족 단위로 방문하며, 특히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엄청난 인파에 순간 당황해 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집을 나설 때는 마음 한 구석으로는 명상하듯 숲길을 걷고 싶었을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애써 고민한 흔적은 사라지고 너나없이 입이 터진다. 조용히 걷고 싶다하면서 사람들이 엄청 몰리는 곳에 가는 이유는 무얼까. 숲이 주는 향기와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돈을 들이지 않으니 좋고, 숲 친구들이 반기니 즐겁고, 숲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확인한 순간, 행복감이 확 밀려온다. 사실 숲이 더 시끄러운데도 밉지 않다.

숲에 퍼진 향기를 맡으려고, 눈을 감는 순간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큰부리까마귀와 직박구리의 울음, 바람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재잘거림은 살짝 공해로 느껴진다. 숲은 조용할 수 없다. 숲 속 생명체들도 보람찬 하루를 위해 숲을 찾은 자동차족들보다 더 바쁘고 시끌벅적하게 움직여야 한다. 어쩌면 사람들의 발길에 치이지 않거나 사람들의 불만스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매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스마트폰 없이도 회의에 참가해서 각자의 역할을 전달받고 일터로 가서는 장맛비에도 숲을 찾는 손님들을 극진히 모실 준비를 한다.

삭막한 도시를 떠나 찾는 곳이 바로 이런 숲이다. 아무나 받아들이고 차별하지 않는다. 특정인이 독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숲 속 생명체들의 의사소통에 경의를 표한다. 숲도 아플까. 간혹 친구들이 두 동강으로 잘리고, 날개가 부러지고, 올무에 다리가 걸리고 때론 통째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숲은 아픈 인간을 먼저 치료해준다. 그 옛날에 의식주를 해결해줬던 숲이기에, 덥석 숲이 주는 서비스에 익숙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숲의 고민을 들어주고 숲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오후 숲길에서 만난 화려한 흰눈썹황금새와 긴꼬리딱새에 정신을 놓은 사이에, 직박구리 부부가 왜 자기들한테 관심이 없냐고 항변하듯 울어댄다. 늘 시끄럽게 운다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만, 언제나 명랑하다. 과묵하지도 않고 붙임성도 좋은 텃새다. 직박구리처럼 사글사글한 친구를 가진 숲이 한없이 부럽고 고맙다. <김완병 동물연구원.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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