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정희진의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입력 : 2026. 09. 18(금) 01:00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소통 애쓰지 말고 때론 침묵하는 힘을"
'서로를 온전한 이해' 판타지
나를 잃지 않는 보호막 필요
표현의 자유보다 책임 중요

[한라일보] "내가 너무 예민한가?" "왜 나는 항상 억울한 생각이 들까?" "나는 왜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할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녀, 부모, 친구, 직장 동료 등과 대화가 안 될 때 이렇게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그런 사람들에게 말한다. "소통이란 원래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소통의 실패를 나의 성격이나 태도 문제로 돌리지 말자."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완벽한 소통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욕망, 환상을 걷어내자고 제안한다. 서로 다른 몸과 위치, 파편화된 언어와 기억, 층층이 쌓인 이해관계와 권력을 가진 인간들이 모든 수준에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에 가깝다면서다.

그래서 소통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때로는 설득을 포기하고 침묵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고 했다. 모든 사람과 이야기하려 하지 않기,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기, 나에게 의미 있는 관계와 장면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최소한으로 말하기처럼 말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라는 질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고 이해 불가능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단단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적 대화의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도 들여다봤다. 저자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외치지만 오늘날 그것이 역전된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고 짚었다.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한 개념인 '표현의 자유'가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허가증이 아니라고 했다. 그 본뜻을 이해한다면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향해 내뱉는 폭력적인 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었다고 밝힌 그는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책임'이 다 강조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민주주의는 언어의 도단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는 대목도 있다. 여기서 언어도단은 피해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언어의 파산을 겪는 사례와 같이 '말이 끊겨버린 자리'를 뜻한다. 저자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성급한 결론이나 매끄러운 위로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 지독한 '말 없음'의 상태 자체를 회피하지 않고 함께 견뎌내는 시간입니다. 민주주의란 바로 그 고통스러운 침묵의 시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와 문화의 다른 이름이어야 합니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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