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좁쌀만이 간세허엿당, 담돌만이 움직인다
입력 : 2026. 07. 23(목) 01:00
김완병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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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좁쌀만큼 게을렀다가 담돌만큼 움직인다'라는 제주 속담이다. 바로 해도 될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좁쌀만 한 일이 돌담만큼 커져 훨씬 더 큰 수고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주어 '간세'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와 버릇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간세꾸레기', '간세다리', '간세둥이'라고 부른다.
세경본풀이에도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자청비가 잔꾀를 부린 정수남을 죽이자, 어머니는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냐며 자청비를 시험한다. 밭에 좁쌀을 뿌려놓고 흩어진 좁쌀을 모두 주워 오라고 한다. 자청비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어머니는 한 톨이 부족하다며 다시 보내신다. 밭으로 돌아가 보니 개미 한 마리가 좁쌀 한 톨을 물고 가고 있었다. 자청비는 개미를 밟고 좁쌀을 되찾는다. 부지런한 개미도 자청비를 당해내지 못했고, 그때부터 개미의 허리가 짤록해졌다.
동화 속 개미 역시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와 달리, 개미는 한여름에도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쉼 없이 일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을 뚜렷이 구분했다. 아이들에게도 개미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베짱이처럼 여유를 부리면 훗날 후회한다고 일깨웠다. 학교 교실에는 '근면', '노력', '성실'이 급훈처럼 걸려 있었고, 새벽마다 우는 종다리는 농부를 깨우는 성실함의 상징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과 속도로 길을 걷지 않듯, 누구나 똑같은 다짐이나 규범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같은 말도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니다. 먹고, 입고, 놀고, 쉬는 방식에 간섭하거나 참견하려다가 되레 난처해진다. 세상이 넓어져 할 일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선택도 존중받는 시대가 됐다.
제주에는 '쉬멍, 놀멍, 걸으멍'을 실천하는 올레길이 있다. 올레의 마스코트인 '간세'는 제주 조랑말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쉬고, 놀면서 여행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예전에는 게으름의 의미가 강했던 '간세'가 이제는 느림과 여유 그리고 치유의 철학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어미 품에 나온 동박새의 알도 때가 돼야 부화한다. 자청비도 열다섯이 돼 문도령을 만났고, 동백꽃도 제때가 돼야 붉게 피어난다. 삶도 서두른다고 바로 꽃이 피지 않는다.
20년째를 맞은 제주올레에는 좁쌀을 뿌려놓은 듯 어디든 간세다리로 가득하다. 사회적 약자까지 품어 온 고(故) 서명숙 이사장이 말한 '간세 철학'은 제주를 넘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좁쌀만 한 일을 미루지 않는 부지런함과 서툴다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기다림도 필요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야 느림의 속도와 가치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시합이 아니라, 길 위의 여행자처럼 함께 걷는 길이다. 그러니 함께라면 늦어도 좋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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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본풀이에도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자청비가 잔꾀를 부린 정수남을 죽이자, 어머니는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냐며 자청비를 시험한다. 밭에 좁쌀을 뿌려놓고 흩어진 좁쌀을 모두 주워 오라고 한다. 자청비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어머니는 한 톨이 부족하다며 다시 보내신다. 밭으로 돌아가 보니 개미 한 마리가 좁쌀 한 톨을 물고 가고 있었다. 자청비는 개미를 밟고 좁쌀을 되찾는다. 부지런한 개미도 자청비를 당해내지 못했고, 그때부터 개미의 허리가 짤록해졌다.
동화 속 개미 역시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와 달리, 개미는 한여름에도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며 쉼 없이 일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을 뚜렷이 구분했다. 아이들에게도 개미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베짱이처럼 여유를 부리면 훗날 후회한다고 일깨웠다. 학교 교실에는 '근면', '노력', '성실'이 급훈처럼 걸려 있었고, 새벽마다 우는 종다리는 농부를 깨우는 성실함의 상징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과 속도로 길을 걷지 않듯, 누구나 똑같은 다짐이나 규범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같은 말도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니다. 먹고, 입고, 놀고, 쉬는 방식에 간섭하거나 참견하려다가 되레 난처해진다. 세상이 넓어져 할 일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선택도 존중받는 시대가 됐다.
제주에는 '쉬멍, 놀멍, 걸으멍'을 실천하는 올레길이 있다. 올레의 마스코트인 '간세'는 제주 조랑말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쉬고, 놀면서 여행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예전에는 게으름의 의미가 강했던 '간세'가 이제는 느림과 여유 그리고 치유의 철학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어미 품에 나온 동박새의 알도 때가 돼야 부화한다. 자청비도 열다섯이 돼 문도령을 만났고, 동백꽃도 제때가 돼야 붉게 피어난다. 삶도 서두른다고 바로 꽃이 피지 않는다.
20년째를 맞은 제주올레에는 좁쌀을 뿌려놓은 듯 어디든 간세다리로 가득하다. 사회적 약자까지 품어 온 고(故) 서명숙 이사장이 말한 '간세 철학'은 제주를 넘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좁쌀만 한 일을 미루지 않는 부지런함과 서툴다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기다림도 필요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어야 느림의 속도와 가치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삶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시합이 아니라, 길 위의 여행자처럼 함께 걷는 길이다. 그러니 함께라면 늦어도 좋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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