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08)애월읍 상가리
입력 : 2026. 03. 06(금) 02:00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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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吉地)이기에 인재 배출 많은 선비마을

[한라일보]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마을이다. 북쪽에 고내봉이 하늬바람을 막아줘서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정주공간이 들어선 지역 남쪽 또한 경사가 높은 언덕들이며 동산이 있어서 이곳에 정착해 설촌했던 최초의 조상들은 풍수지리에 밝은 분들이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설촌 초기부터 '더럭'이라 불러왔다. 인근 마을들의 옛 명칭들이 한문이 아니라 우리말로 부른 것을 보면 보편적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태종16년(1416)에 제주를 3읍으로 나눴는데, 이 당시에 일부 큰 마을들을 분촌하는 경우가 있었다. 1418년 고내현을 고내촌과 가락촌으로 나뉘었다. 이후 세종 30년에는 마을 자체에서 웃더럭(上加樂村) 알더럭(下加樂村)으로 구분해 부르기 시작했다. 연원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전해 내려오는 설이 있지만 대부분 추측뿐인 한자로 표기된 加樂. 뜻이 참으로 정겹다. '즐거움이 더해지는 곳'. 조선시대 이 명칭은 관아에서 문서용으로 주로 사용했고 마을 주민들이나 주변마을 사람들은 '더럭'이라는 이름이 통용됐다. 웃더럭이라고 하는 마을 명칭이 흘러온 경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회관 남쪽 동산 아래 다른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시비가 있다. 상가리라고 하는 한 시를 거대한 돌에 새겨서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마을공동체의 의지라는 것이다. 한글로 해석한 내용을 옮기면 '한라산의 정기가 선비고을에 서리니 / 경관 좋은 가락촌에 상서로운 빛 엉기네 / 서학당에서는 세상의 도리 전했고 / 하운암에서는 시 문장을 즐겼다네 / 노을 드리운 저녁 바다에 그림 속 경치 열리고 / 바람 스치는 가을 들에서는 귤향기 보내 오내 / 길한 땅이라 인재가 연이어 배출되니 / 모든 집의 후예들 모두 번창하리라'. 단순하게 어떤 염원을 돌에 새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강력한 표출이며 그 정체성을 이어가겠다는 각오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합의를 천명하는 내용으로 읽힌다. 어찌하여 양반고을 선비마을이라고 주변마을 사람들 또한 지칭하며 살아왔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비정신으로 인격도야에 힘써서 세상을 위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한 명의 인재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라는 사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른들은 어떤 모범과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다짐하는 시문이다.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왔기에 세상을 위해 일하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것을 각 집안마다 내력담으로 전해지고 있으니 공감대가 형성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예의(禮義)와 염치(廉恥)라고 하는 두 개의 덕목이 깊이 뿌리내려 천년 고목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마을 상가리다.
양철승 이장에게 상가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참으로 의미 깊은 대답을 했다. "단점이 곧 장점인 마을이지요, 남에게 궂은소리를 못해서!" 그러니 분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남에게 말로 화살을 쏘느니 내 속으로 삭히고 말겠다는 독특한 마을 문화가 양반고을의 정신적 배경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 불만을 쏟을 시간이면 내가 솔선수범하고 만다는 의식으로 승화되면서 마을만들기 사업과 같은 공동체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에 두각을 나타내는 근거가 확실하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하고 돌파할 자신감 충만한 마을이지만 자연이 알아서 해줘야 하는 일에는 난감한 고충이 있었다. 농업용수 문제였다. 관정의 숫자도 모자란 형편이지만 농한기에 받아놓을 농업용수를 저장할 시설이 부족해 고충을 토로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 농민이 농사지을 물이 부족해 농작물이 말라죽는 것을 보는 심정은 지옥이 따로 없는 것이라고 했다.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행정적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됐는지 점검하고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는 행정당국에게 상가리 농업용수 문제는 양반고을 스타일로 치산치수(治山治水)가 근본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시각예술가>
동산을 오르는 길에서
<수채화 79㎝×35㎝>
양반고을 상가리의 모습을 그리려니 고풍스런 수묵담채 산수화 분위기가 감도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파격적인 구도를 만났다. 급경사 오르막이 놀라운 화면 구도 속에 배치되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등산로 정도의 급경사를 도로포장까지 해서 사용하고 있는 자연스러움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렸다. 수묵담채에서 수묵의 기능을 연필로 강조를 하고 채색을 될 수 있는 한 연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명암법을 동원하다보니 동양과 서양이 융합되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동산 중턱의 집이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나무와 길이 어우러진 분위기에 합류해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설명하려는 듯하다. 3월이 되었지만 아직 초록 순들이 올라오지 않아서 겨우내 누런 풀잎이면 나뭇가지들이 지난겨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주인공은 단연 오르막길이다. 휘어지며 올라가는 구조가 화면 속에서 정중동(靜中動)의 탄력을 생성시킨다. 쭉 뻗은 길보다 나무 우거진 사이에 오르막길은 휘어지며 올라가는 것이 수월하다. 넝쿨이 나무를 오르는 지혜는 저렇게 감아 돌아가는 것. 대쪽 같은 선비들이 보면 야단을 칠 일이로되 현실적으로 보이는 저 오르막 길의 곡선에서 자연미를 추출하는 보람으로 그렸다. 길과 나무,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저 집을 화폭에 담아 상가리의 깊이를 느끼려 했다. 길가에 풀들이 초록으로 가득하면 또 다른 느낌의 생동감이 다가올 것이다. 그 때 저 오르막길을 오르는 도포 입은 선비를 그려야지.
산과 이웃하여
<수채화 79㎝×35㎝>
지붕을 가까이 마주한 이웃을 그리다가 문득 놀라운 생각에 고내봉을 크게 등장시키는 구도로 변경해 그렸다. 이유는 간명하다. 상가리 마을 전체가 한 집안이라면 저 산과 이웃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마을 조상들이 최고의 길지(吉地)라고 강조하며 선비정신에 입각해 학동들을 훈육하며 인재로 양성시키고자 했던 것은 그 근본에 '사람의 도리'를 항시 염두에 두고 살았음이니. 사람의 도리란 거창한 담론이기에 앞서 이웃의 도리부터 시작되는 것, 저 지붕들이 작은 산이면 작은 산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그 산으로 이뤄진 마음이 고내봉이라고 하는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자연스런 구조다. 이러한 마인드로 귀결되도록 화폭을 구성하는 작업이 보람이요, 구도를 형성하는 면에 있어서는 난제였다. 도시화된 숱한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웃의 모습을 회화라고 하는 영역을 통해 상가리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으로 보여 지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랴마는. 이 마을 사람의 심성을 집 두 채와 산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오만방자 기고만장이 넘쳐나는 그림이다. 놀라운 보색대비를 위해 산의 색을 붉은 지붕의 빛 바랜 빨간색과 색상환으로 대척점에 있는 청록을 찾아 칠했다. 나무들이 어렴풋이 보이는 가까운 산이지만 색채 중심으로 단순화 한 것은 저 붉은색 지붕과 대비효과를 위한 판단 때문이다. 사실주의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인상주의적 요소를 투입한 상징적 그림으로 그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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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승 이장 |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에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극복하고 돌파할 자신감 충만한 마을이지만 자연이 알아서 해줘야 하는 일에는 난감한 고충이 있었다. 농업용수 문제였다. 관정의 숫자도 모자란 형편이지만 농한기에 받아놓을 농업용수를 저장할 시설이 부족해 고충을 토로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 농민이 농사지을 물이 부족해 농작물이 말라죽는 것을 보는 심정은 지옥이 따로 없는 것이라고 했다.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행정적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됐는지 점검하고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는 행정당국에게 상가리 농업용수 문제는 양반고을 스타일로 치산치수(治山治水)가 근본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시각예술가>
동산을 오르는 길에서
<수채화 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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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이웃하여
<수채화 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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