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83] 3부 오름-(42)물이 흐르는 내는 돌내, 마른 내는 여우내
입력 : 2024. 05. 28(화) 00:00수정 : 2024. 05. 28(화) 14:11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돈내코, 멧돼지가 물을 먹던 곳이라는 황당한 해석
돈내코란 무슨 뜻인가? 설설설


[한라일보] 효돈천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천천(靈泉川)으로 표기한 이래 각종 문헌에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효돈천'으로 표기되었다. 실제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 '돈내' 혹은 '둔내'를 반영한 것이다. 이후 1936년 하천 길이와 명칭을 정한 '조선하천령'에서 지금 이름으로 굳어졌다.

돈내코는 돌내의 호수라는 뜻, 효돈천의 옛 이름은 영천(돌내)으로 물이 흐르는 내이다.
지역에서 부르는 '돈내' 혹은 '돈천'이란 무슨 말인가? 누구는 돌아서 흐르는 내라는 의미라 하고, 또 누구는 돌아서 흐르는 내가 어디 이 하나뿐인가고 반박하면서 "쉐둔을 경유해 흐르는 하천이라고 한다. '쉐둔'의 한자 표기가 '효돈(孝頓)', '효돈(孝敦)' 등으로 바뀌면서 '돈내' 혹은 '돈천'으로도 불렀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설명은 문제가 있다. 우선 거의 500년간 사용해온 영천천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천천(靈泉川)은 '영세밋내'의 한자 차용 표기다. 영(靈)은 '영'의 훈독자, 천(泉)은 '세미'의 훈독자, 천(川)은 내의 훈독자이다." 언뜻 문제없어 보이지만 사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다. "문헌과 고지도에는 '영천천(靈泉川)'으로 많이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하천이 영천악을 경유해 흘러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문장도 그 뜻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영(靈)이 무슨 뜻인지 설명이 없는 것이다.



신례천이란 호천에서 기원,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내


또 다른 하나는 '돈내'라는 이름에 관한 설명이다. 돌아서 흐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하필 이 하천에만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신례천, 옛 이름은 호촌천으로 평소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내라는 뜻에서 기원한다. 김찬수
'쉐둔'을 경유해 흐르는 하천의 뜻이라면 '쉐둔'이라는 말이 먼저 생겼는지, '돈내'라는 말이 먼저 생겼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쉐둔은 소를 키우던 둔(屯)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이라지만 과거 목장 편제에서 '쉐둔' 혹은 '우둔(牛屯)'이란 찾아볼 수 없다. 여러 문헌과 지도에 10소장 58~64개의 자장(字場) 혹은 자목장(字牧場) 같은 편제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우둔(牛屯)은 없다. 둔(屯)이라는 말이 나오는 단어는 둔마(屯馬) 정도다. 이것은 목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된 것인데, 암말 100필, 수말 15필로 나누어 만든 소규모의 목장을 자목장이라 하며, 이 말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쉐둔이란 말은 서귀포시 효돈과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명이 소(牛)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근거가 미약하다.

영천천(靈泉川)은 한때 '호촌천'이라고 했었다. '대동여지도'에 호촌천(狐村川)으로 잘못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호촌천'은 지금의 신례천으로 영천천과는 구별된다. 논고악에서 신례리와 하례리를 거쳐 바다로 흘러간다. 호촌이란 신례리와 하례리의 옛 이름이다. 예춘 혹은 예촌이라고도 했다. 고려 시대에는 호아현(狐兒縣, 여ㅿ+ㆍ현)이라 하다가 호아촌(여ㅿ+ㆍ마을), 또는 호촌(狐村, 여ㅿ+ㆍ마을)이라 했다. 이 지명에 대해서 호아(狐兒)를 훈독자로 보아 여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호아현(狐兒縣) 혹은 호촌(狐村)을 '여ㅿ+ㆍ마을'로 쓴 건 맞다. 그러나 狐(여우 호)가 나타내는 여우를 중세국어에서는 '여아', '여ㅿ+ㆍ', '여ㅿ+ㅡ', '여으', '여희' 등으로도 썼다. 이 정도로 표기가 많다는 것은 음상이 매우 다양했다는 뜻이다. 제주도 고대인들은 어떤 뜻으로 이렇게 발음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여우와 관련된 말이었을까?



‘코’는 돌궐어 '쿨'에서 기원, 돈내코는 돌내에 있는 호수


비슷한 시기에 '여위다'라는 말도 거의 같은 발음이었다. 이 말은 오늘날 흔히 '야위다'로 쓴다. '살이 빠져 파리하게 되다', '빠지다' 등의 뜻이다. 그런데 '마르다'의 뜻으로도 쓴다. 중세국어에서도 같은 뜻으로도 썼다. 1527년 '훈몽자회'에서 瘦子(수자)를 '여윈놈'이라 했다. 말라깽이라는 뜻이다. 1677년 '번역박통사언해'에는 마른 밥(건반, 乾飯)을 야윈밥이라 했다. 호아현(狐兒縣) 혹은 호촌(狐村)은 여우내 가까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영천천이 물이 흐르는 낸 데 비해서 그 가까이 평행하게 흐르는 이 내는 마른 내라는 뜻이다. 마른 내는 여우내이고 한자표기로 호아천(狐兒川) 혹은 호천((狐川)이다. 따라서 '돈내'는 '달내'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은 물이다. 영천(靈川)은 '달내', 영천(靈泉)은 '달세미'인 것이다. '달내'가 축약하면서 '돈내'로 변한 것이다.

이제 돈내코가 떠오를 것이다. 돈내코는 상효동 산21-20번지에서 샘이 솟아나 고이는 곳을 말한다. 영천에 있다. 돈내코라는 지명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 멧돼지들의 물을 먹었던 내의 입구라는 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돌아서 흐르는 내의 내민 부분이라는 설, 효돈천이 효돈의 '돈'자를 따서 돈천 또는 돈내로 불리었고, 입구에 해당하는 '코(口)'가 붙여져 '돈내코'로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것은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돈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이야기일 뿐이다. 돈내코는 '돈내'에 '코'가 붙은 합성이다. '코'는 '쿨'의 변음이다. 호수를 뜻하는 돌궐어다. 돌궐어권의 여러 언어에서 호수를 쿨, 클, 글, 골 등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호수 이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 몽골의 흡수굴 호수가 있다. 돈내코란 돈내(靈川)의 호수를 말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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