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마음을 공부하라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입력 : 2020. 12. 02(수) 00:00
요즘 학교 가기 싫다고 진료실을 찾는 아이들이 줄었다. "학교 가라, 컴퓨터 그만해라" 할 때는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학교 오지마라, 컴퓨터로 수업 들어라" 하니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지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교사들의 사정은 좀 다르다. 비대면과 대면 수업의 수시적 교대로 업무가 가중되었을 뿐 아니라 상시 대기조처럼 두 상황을 모두 준비해야하는 긴장에 피로가 늘었다. 당연히 가던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면서 학교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절이다.

성적, 입시, 왕따, 자해, 학교폭력, 학업중단, 교사의 소진. 학교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자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100명 중 30명이 학교폭력을 경험하며, 3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전 연령대에 걸쳐 우울, 불안, 강박, 중독 등의 질병과 자살이 증가하는 건 피하기 어려운 귀결일 것이다. 더욱 서늘한 것은 이런 증가율이 20대 청년과 10대 아동·청소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 파릇한 생명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을까?

더욱이 교사들의 정신건강에도 빨간 불이 켜진지 이미 오래다. 학생 인권이 성장하며 교사 인권은 약화되었고 학생 눈치보기와 온갖 행정업무에 떠밀려 휴직과 퇴직을 상담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불행한 아이들을 소진된 교사가 돌보다니, 이대로라면 학교에 희망이 있을까?

근래 들어 참 듣기 어려운 말이 우정과 스승이다. 앞 칸으로 치고나가거나 내가 탄 앞 칸을 지키려면 남을 이겨야한다고 가르치는 세상이니 이젠 한글사전에서나 찾아봄직하다. 또 흔하게 접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정반대인 단어가 자존감과 존중이다. 자기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무슨 자존감이며, 내가 나와 타인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하는데 웬 존중인가? 그리고 또 다른 해괴한 말 중 하나가 '교육서비스'다. 교육을 상품으로 여기면서 아이가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다니!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 근대 산업사회의 교육은 표준화된 산업 일꾼을 키워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이제 기술과 지식은 전문학원과 유튜브, 인터넷에서 더 쉽게 원하는 시간에 배울 수 있다. 그러니 학교는 이제야말로 본질로 돌아갈 때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곳, 나에 대한 여러 실험을 선생님과 친구들의 조력 하에 안전하게 해볼 수 있는 곳, 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의 출발은 '나'이다. 우리는 '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우주만물과 소통하며 신을 만난다. 그리고 이 '나'는 다른 존재들과 자연의 연결망 속에 존재하는 전체의 일부이다.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이 이를 선명히 보여준다.

예로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 하여 자기수양을 모든 것의 기본으로 삼았고, 부처는 자기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과 자비의 실천을 설법했으며, 기독교에선 하느님의 자애로운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보도록 가르쳤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돌보도록 정규수업에서 가르쳐야 한다. 교사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회복하도록 전문가를 투입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 마음의 연구자가 되는 것이 살 길이라 말한다면 정신과의사의 궤변이라 생각하려나?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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