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사랑의 온도탑
입력 : 2014. 11. 27(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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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녘으로 들어서는 시가지에는 듬성듬성 남아있는 가로수 낙엽들이 달리는 차창 너머로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모습들이며, 떨어진 낙엽들이 추적거리며 나뒹굴고 있는 모습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나의 머리카락을 들여다보는 듯이 어딘가 텅 빈 것처럼 쓸쓸한 잔상을 남긴다.
잠깐 과거를 떠올려 보면 까까머리 어린아이들이 고구마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거나 동구 밖에 앉아서 저녁 늦게 귀가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향기를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었던 생각이 연기처럼 떠오른다. 당시의 상징은 배고픔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제 50여 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우리 도에서도 사랑의 온도탑을 세웠다는 기사가 나왔다.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전국 유명 도시마다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와 헌금을 받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열매'를 가슴에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나 제주에서도 구세군 냄비가 등장해서 십시일반 도움의 정성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다양한 형태로 동심을 자극하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가 된다. '사랑의 열매' 우리 야산에서 자라는 '백당나무의 열매'가 등장한다. 나, 가족, 이웃이 더불어 따뜻하게 함께 사는 시대를 만들어 내자는 상징성을 담아내고 있다. 1865년 런던 빈민가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윌리엄 목사가 세웠던 구세군 냄비는 전 세계적으로 종교를 넘어 따뜻한 이웃을 돕는 매개체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산타클로스 역시 터키 지역 항구도시의 대주교가 추운 겨울에 남모르게 어려운 어린이를 돕던 일이 알려지면서 현재 산타클로스의 모형으로 발전했다. 지금이나 어린 시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상상 속 산타 할아버지가 그리워지고 가슴 설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굳이 외국 사례가 아니고도 우리 제주가 낳은 의녀 만덕 할머니에서 나눔의 덕은 찾아볼 수 있다. 이맘때 쯤 구세군 냄비, 사랑의 열매 등 추위를 녹여 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려 주는 대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에는 설렘이었고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심코 겨울이 시작되면 으레 그러려니 해서 지나쳐 버리는 게 우리 일상이 아닌가 싶다. 문득 이런 일들이 어디서 기인되었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가 한눈에 보이는 지금이다. 우리가 50~60년대 살았던 모습이 스크린에서 보인다. 단돈 천 원이 그리운 아이들이 우리에게 절실한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물질만이 아니고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이 그리운 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득 사랑의 온도탑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 5도 10도 30도 60도 100도 그렇게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우리 제주 사회가 훈훈해지고 퍼지는 수증기로 미래의 사람 가치를 더 키우는데 에너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시작됐든 목요일 이 아침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아봤으면 한다. <고경실 제주도의회 사무처장>
엊그제 우리 도에서도 사랑의 온도탑을 세웠다는 기사가 나왔다.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전국 유명 도시마다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와 헌금을 받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열매'를 가슴에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나 제주에서도 구세군 냄비가 등장해서 십시일반 도움의 정성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다양한 형태로 동심을 자극하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가 된다. '사랑의 열매' 우리 야산에서 자라는 '백당나무의 열매'가 등장한다. 나, 가족, 이웃이 더불어 따뜻하게 함께 사는 시대를 만들어 내자는 상징성을 담아내고 있다. 1865년 런던 빈민가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윌리엄 목사가 세웠던 구세군 냄비는 전 세계적으로 종교를 넘어 따뜻한 이웃을 돕는 매개체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산타클로스 역시 터키 지역 항구도시의 대주교가 추운 겨울에 남모르게 어려운 어린이를 돕던 일이 알려지면서 현재 산타클로스의 모형으로 발전했다. 지금이나 어린 시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상상 속 산타 할아버지가 그리워지고 가슴 설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굳이 외국 사례가 아니고도 우리 제주가 낳은 의녀 만덕 할머니에서 나눔의 덕은 찾아볼 수 있다. 이맘때 쯤 구세군 냄비, 사랑의 열매 등 추위를 녹여 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려 주는 대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에는 설렘이었고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심코 겨울이 시작되면 으레 그러려니 해서 지나쳐 버리는 게 우리 일상이 아닌가 싶다. 문득 이런 일들이 어디서 기인되었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가 한눈에 보이는 지금이다. 우리가 50~60년대 살았던 모습이 스크린에서 보인다. 단돈 천 원이 그리운 아이들이 우리에게 절실한 도움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물질만이 아니고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이 그리운 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득 사랑의 온도탑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 5도 10도 30도 60도 100도 그렇게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우리 제주 사회가 훈훈해지고 퍼지는 수증기로 미래의 사람 가치를 더 키우는데 에너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시작됐든 목요일 이 아침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아봤으면 한다. <고경실 제주도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