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4·3이 아프지 않은가
입력 : 2013. 08. 13(화) 00:00
1999년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4·3'을 알았다. 대학 1학년, 과 선배·동기들과 어울리기 위해 4·3유적지 순례(전도 일주)에 나선 것이 시작이다.

당시 캄캄한 동굴(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학살을 피해 숨어들었던 조상들의 삶을 체험해본 적이 있다. 불과 몇 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칠흑의 어둠은 지금도 뇌리에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리포트 과제를 위해 처음 4·3 위령제를 찾아서야 비로소 4·3을 마음에 새겼다.

솔직히 기자는 4·3에 관심이 없었다. 어릴적 부모님으로부터 4·3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없지만 제주도민이라는 이유만으로 4·3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단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았다는, 가족이 죽는 모습을 숨어 지켜봐야 했다는 피해자,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지난 대선때 제주를 찾은 안철수·문재인 전 후보가 4·3 평화공원, 너분숭이를 방문하고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아마 기자가 겪은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의 눈물일 것이다. 관심이 없어도, 타지인이어도 눈물을 흘릴만큼 4·3은 비참하고 아픈 역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부는 4·3을 위해 흘릴 눈물이 없는가 보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희생자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되고 이제서야 4·3 희생자 유족들의 숙원인 4·3국가추념일 지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4·3평화공원 3단계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움켜쥐고, 사업 축소를 종용하며 배정된 예산조차 주지 않고 있다. 예산 지원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중 하나다.

지금 제주는 65년간 반목과 질시로 등지고 살았던 4·3유족들과 경우회가 화해의 손을 잡으면서 '도민 통합'분위기가 달궈지고 있다. 눈물이 없다면 찬물이라도 끼얹지 말아줬음 좋겠다. <오은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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