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이 죽음의 끝에서
입력 : 2024. 02. 23(금) 00:00수정 : 2024. 02. 25(일) 14:19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영화 '파묘'.
[한라일보] 삶과 죽음 사이, 그토록 깊은 슬픔과 아득한 절망의 곁에는 누가 서 있을까. 장례식장에 모여드는 수많은 이들이 뭉쳐낸 슬픔의 거대한 무게 옆에는 늘 이 의식을 직업으로 치르는 이들이 슬픔과 절망의 무게에 동요 없이 단단하게 서있곤 한다. 의학으로는 명백하게 밝힐 수 없는 절체절명의 운명 앞에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될 때 우리는 절박한 심경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다는 이들을 찾아 답을 구하곤 한다. 확신에 가까운 죽음이라는 끝과 불확실한 시작을 찾아 헤매는 희망 사이, 산 자들이 세차게 흔들리고 망자들이 미동 없이 침묵할 때 어떤 이들은 이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비일상적인 일상을 묵묵히 살아간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통해 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장인으로 주목받은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파묘'는 '묘를 파다'라는 강렬한 제목을 갖고 있다. 영화는 '무덤을 파는 행위'와 그 행위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의 삶을 골몰하게 바라본다. 오랜 죽음의 흔적을 좇아 자신의 삶을 다해 파고드는 직업인들, 즉 이 영화는 '무덤을 파는 이들의 삶'을 파고드는 영화다.

영화 '파묘' 속의 중요한 분기점은 '첩장'이다. 첩첩산중 속 고립무원 같은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무덤을 파던 이들이 '무덤 아래의 무덤'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지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이 끌려가는 상황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영화에게도 인물들에게도 운명적인 전환이고 필연적인 선택의 순간이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했다고 안도하는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또 하나의 더 크고 힘든 난관 그리고 그 난관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업의 의미가 영화 속 인물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부 프로페셔널한 직업인들의 능숙함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며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낯선 직업인의 세계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그 직업을 택한 이들이 뿜어내는 광채를 배우들은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첩장'의 순간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은 매혹과 광채 아래 자리한 깊은 곳을 건드린다. 업의 이유와 의미를 깨달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하중이 실린다. 어떤 의미에서 '파묘'는 히어로물이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파묘'는 힘주어 말하는 영화다.

'파묘'는 그렇게 쉬지 않고 죽음으로 향하는 이들의 삶을 뒤쫓는 영화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여정은 때로는 순례길에 오른 이들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가늠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품고 출발했던 이들은 함께 당도한 종착지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신 곁에 있는 이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다. 내게 '파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던 이들이 그렇게 죽음의 뿌리를 더듬어 내 삶의 몸통과 타인의 가지를 만지는 영화로 느껴졌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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