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살짝곰보의 꾸지람
입력 : 2023. 05. 11(목)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한라일보] 한여름 대낮인데도 숲이 울창해 산길은 어두웠다. 베염이 지나간 듯 이어지는 꼬부랑길에는 도체비꽃이 만발했다. 안내원과 함께 한참 산길을 가다 물장오리 아래에서 진수내(川尾川) 줄기를 만났다. 두 사람은 물이 마른 냇바닥을 노루처럼 내달려 건너편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가쁜 숨을 돌리며 조릿대 덤불 앞을 바라보니 하얀 꽃길이 달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틀낭에서 떨어진 꽃눈깨비가 만들어 낸 조화였다. 4·3봉기가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난 7월 어느 날, 아지트에 은신한 이덕구 선생을 찾아가는 조천중학원의 김민주 학생의 발길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이 묘사는 여섯 해 전 '이덕구 산전'을 찾아가며 느꼈던 풍경을 김민주 학생의 입산 모습인 양 상상해 본 것이다.

교토의 리쓰메이칸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가 관동군 소좌로 해방을 맞고 귀향한 이덕구는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체육 과목을 가르쳤다. 살짝곰보 이덕구는 체구가 훤칠한 호남형이었다. 체육대회 때는 응원단장을 자임해 삼삼칠 박수를 이끌며 학생들과 어깨도 걸었다. '덕구 덕구 이덕구 박박 얽은 그 얼굴'이란 노래가 학생들 사이에서 불렸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는 3·1사건 직후 경찰의 고문으로 고막이 터지는 상처를 입었다. 감옥을 나와 다시 교단에 섰지만 곧 이어진 8·15검거 선풍에 자취를 감춰야 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육지로 떠난다고 말했지만 그는 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교사와 학생들이 수시로 경찰서에 붙잡혀 가는 와중에 학생회장인 김용철 치사사건이 터졌다.

여름옷을 걸치고 입산한 제자는 다섯 달 후에야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12월의 한라산은 모진 바람이 몰아치는 눈밭 세상이었다. "너는 집에서 가만히 공부하지 왜 이런 데 왔느냐"며 스승은 환영 대신 제자를 나무랐다. 걱정과 애정이 담긴 꾸지람이었다.

이듬해 6월 7일, 이덕구 사령관은 시안모루 지경 '북받친밭'에서 토벌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부인과 다섯 살 아들 진우, 두 살배기 딸은 물론 친척들도 대부분 4·3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아들 진우가 울며 살려달라고 하자 경찰관은 "아버지 있는 산으로 달아나라"고 하고는 산을 향해 뛰어가는 그를 쏘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십자가에 묶여 관덕정 광장에 전시된 이덕구의 시신은 때 절은 일본군 비행복에 입가에 피를 흘린 채였고, 그를 조롱하기 위해 웃옷 주머니에 수저를 꼽아 넣었다. 이후 경찰은 생포돼 조사받던 그의 부하들을 시켜 효수된 머리를 전봇대에 매달았다. 이 일이 끝나자 당국은 시신을 남수각 냇가에서 화장했고, 유골은 다음 날 큰비가 내리는 바람에 바다로 떠내려갔다고 발표했다. 죽음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스승의 꾸중 때문이었을까. 제자는 하산한 후 일본으로 밀항해 오현중학교의 역사교사였던 김봉현과 함께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라는 책을 내었다. 누구라도 그러한 스승이라면 평생을 안고 살았으리라. 곧 스승의 날이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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