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그림자를 품은 빛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3. 01. 25(수) 00:00
[한라일보]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요", "그럴 상황이 아닌데 울컥 눈물이 나요", "왠지 모르게 불안해요".

최근 몇 년 사이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들 중 일부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와 직장에서도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일명 '쿠션 언어'를 써가며 부드럽게 이야기하려 애쓰는 데 왜 이리 분노조절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라 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현대 문화에서 인간의 감정 중 기쁨과 편안함은 좋은 것이고 화, 슬픔, 불안은 나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혹시 부드럽고 밝은 감정만을 칭송하고 그렇지 않은 감정은 거부하는 문화가 도리어 우리 사회를 거칠고, 어둡고,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도려내듯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 인류는 어쩌면 감정도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가 그렇듯 감정도 부정하고 억압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응축돼 폭발적인 힘을 가진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기쁨, 슬픔, 분노, 불안, 예민함 등 모든 감정은 각기 나름의 역할을 하며 관계와 삶을 풍요롭고 생동감 있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정, 진솔한 표현, 차이의 드러남, 갈등, 정화, 변화의 과정을 거치기 전 억압돼 버리는 감정은 자기 소외를 가져와 인간과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때로 우리는 감정의 억압을 미화하지만 이는 정화되지 않은 채 눌려서 숨겨진 것이므로 우리를 경직되게 하고 관계와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빛은 어둠과 한 쌍으로 이것 없이 저것이 있을 수 없다. 빛과 어둠, 낮과 밤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 좋음과 싫음이 있게 된다. 인간은 이 대립적 세계 속에서 진선미와 좋은 것을 추구해 왔지만 언제나 반대의 것들도 같이 발생해 갈등과 모순을 겪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생에는 이런 대립과 모순을 가뿐히 넘어서게 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번 명절에 처음 만난 세 살배기 조카의 환한 미소와 순수한 언행에는 아무런 대립과 모순이 없었고 그런 조카와 사랑에 빠져든 그 순간은 그저 생생하고 충만했다. 성서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이가 천국에 산다고 말한 연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자체가 생명이며 이 흐르는 생명의 원동력은 사랑이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인데 그림자가 지지 않으려면 빛을 받는 물체에 크기가 없어 빛과 하나여야 한다. 나를 잊고 지금 여기에 온전한 순간처럼.

그림자를 배제한 채 빛이기만을 바라는 것 역시 탐욕이고 이 대립과 분리가 더 깊은 어둠을 양산하는 데 함께 기여해 왔을 수 있다.

그림자를 안은 빛으로 자연스럽게 다양한 감정을 물 흐르듯 느끼며 행복한 오늘을 살자.

매사가 복이고 새 복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삶을 복되게 한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며 여러분의 복된 새해를 소망한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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