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당신의 찰나를 기억하는 제주 '백년가게' 사진관
입력 : 2022. 10. 27(목) 13:02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③ 중앙사진관 임용주씨
올해 '백년가게' 선정된 서귀포 대정읍 '중앙사진관'
1960년대 후반쯤 문 열어 아버지 이어 아들이 운영
디지털 도입 등 빠른 시간 흐름에도 추억 고스란히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중앙사진관' 한편에 걸려 있는 흑백사진. 사진관을 처음 연 고(故) 임방채 씨가 찍은 가족 사진들이 눈에 띈다. 사진관을 이어 받아 운영 중인 임 씨의 둘째 아들 용주 씨는 아버지가 "항상 사진을 찍어줬다"고 했다. 그렇게 남은 사진은 용주 씨와 한 가족의 삶의 기록이 돼 남았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그런 곳이 있다. 어떤 순간의 기억이 짙게 남아 있는 공간. 어린 시절 친구와 뛰놀던 동네 골목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학교 앞 분식집처럼 말이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건 운이 좋은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추억할 일이 있는 건 오늘을 사는 선물과 같다.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중앙사진관'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다. 처음 문을 연 게 60년 전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가게는 아버지에서 그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에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이곳의 이야기가 궁금해 졌다.

|노벨사진관서 중앙사진관으로… 마을 주민의 추억 공간

"원래 이름은 '노벨사진관'이었어요. 오늘도 할머니 한 분이 ‘노벨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걸 들었지요." 중앙사진관을 운영하는 임용주(56) 씨가 말했다. 노벨사진관에서 중앙사진관으로 간판을 바꿔 단 지 50년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노벨사진관을 먼저 떠올리는 동네 어르신들이 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의 거리에 생긴 최초의 사진관이자 수십 년간 문을 여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임용주 씨는 "1990년대까진 모슬포에도 사진관 대여섯 곳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다 없어지고 저희 가게와 새로 생긴 사진관 1곳 정도만 있다"고 했다.

중앙사진관은 임용주 씨와 나이가 비슷하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이 안 되지만 그의 아버지 임방채 씨가 1960년도 후반에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건 1974년이다. 처음 사진관 자리에서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건물을 지어 이사를 왔다.

지금의 중앙사진관 자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처음 자리잡았던 '노벨사진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은 어른 시절 임용주(왼쪽에서 세번째) 씨.
새 건물엔 예식장도 차려졌다. 아버지가 사진관과 함께 운영한 '중앙예식장'이었다. 도내 곳곳에 작은 예식장이 많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식장에서 결혼식과 음식 대접을 한 번에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집에서 3일간 잔치를 하며 손님을 맞고 예식장에선 간단히 식만 올렸다. 그 당시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에게 '중앙예식장'은 또 다른 추억의 공간이다.

마을에 젊은이들이 줄면서 예식장은 사라졌지만 사진관은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임방채 씨의 둘째 아들인 용주 씨가 맡아 이어 가고 있다. 사진에 관심을 둔 건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몸으로 익힌 일이었다. 그는 "과거에는 흑백사진이니까 빨간불 외에 다른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서 사진을 뽑았다"면서 "더운 여름에는 늦은 밤에 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작업을 했는데, 중고등학교 때 암실에서 밤새 도왔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임용주 씨의 아버지인 임방채 씨가 1970년대까지 사용했다는 카메라. 중앙사진관 한편에 전시돼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당신의 '그때'를 기억하는 사진관

사진관을 맡게 된 건 아버지의 갑작스런 지병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출장 사진을 찍었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인 1992년쯤부턴 사진관 운영을 도맡다시피 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사진관도 빠르게 바뀌었다. 2002년, 중앙사진관에도 '디지털'이 도입됐다.

"도내 사진관 중에선 두 번째로 디지털을 도입했을 겁니다. 제주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분들도 와서 보고는 '필름으로 찍지 않는데, 이것도 사진이냐'고 했지요. '기술이 기술’이라던 아버지의 말도 생각납니다. 그전까지 사진관 일을 조금씩 도와주던 아버지도 그때부턴 일을 놓으셨지요."

필름 현상을 하지 않아도 사진을 뽑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일은 편해졌다. 밤새 하던 앨범 작업의 시간도 크게 줄었다. 바쁠 땐 밤 12시에서 새벽 1~2시까지 불을 밝혔던 사진관은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 지금도 사진관 인근 학교 7곳의 졸업앨범을 맡고 있지만, 디지털로 바뀐 뒤에는 이전보다 일이 수월해졌다.

기술도 유행도 빠르게 변하지만 중앙사진관에선 시간이 멈춘 듯이 흐른다. 누군가의 찰나를 여전히 기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찍는 백일과 돌 사진부터 학교 졸업 사진과 결혼사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의 기념사진과 영정 사진까지. 중앙사진관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이 없다고 저희 사진관을 찾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 사진으로도 할 수 있었겠지만 거기엔 홀로그램이 있어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거든요. 가시는 길이니 좋은 사진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예전에 찍어둔 사진이 없는지 저희 사진관에 물어왔던 건데, 확인해 보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쓸 때는 사진을 인화해서 필름과 함께 드렸다면, 디지털로 바뀐 뒤에는 찍은 사진은 모두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중앙사진관 대표 임용주 씨.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는 게 일인 그이지만, 정작 본인의 사진을 찍는 것은 어색하고 낯설다.
|'백년가게' 중앙사진관, 진짜 '100년 가게'를 향해

중앙사진관 한편에는 그의 아버지가 찍은 흑백사진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에 용주 씨와 형제들, 친구들이 주인공이다. 그의 말처럼 “항상 사진을 찍어줬다”는 아버지는 용주 씨의 어린 시절을 하나하나 남겼다. 태어난 지 백일이 되던 날부터 유치원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하던 날도 아버지의 카메라는 용주 씨를 향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남긴 한아름의 사진은 그의 삶이 돼 남았다. 그가 사진을 "예술이 아닌 일상의 기록인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인 듯했다.

중앙사진관은 올해 '백년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사랑을 받은 점포 중에 중소벤처기업부의 인증을 받은 곳이다.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 등이 평가 대상이 된다. 동네 이장님의 추천으로 우연찮게 신청하게 됐지만 되고 나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아버님 때부터 이어 오는 거라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를 따라 사진을 익힌 것처럼 용주 씨의 아들도 사진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공통점이 흐른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그의 아들로. 중앙사진관은 오늘도 진짜 '100년 가게'를 향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중앙시장 인근에 있는 '중앙사진관'. 이곳으로 옮겨온지 5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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