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47)해변의 가방 파는 여인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8. 16(화) 00:00
[한라일보] 그녀는 해안도로에 붙은 모래사장에 서서 가방을 팔고 있었다. 나는 2층 카페에서 한 시인과 같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았다. 카페가 2차선 해안도로에 붙어 있기 때문에 도로 건너에 있는 그녀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해야 할 정도로 가깝게 보였던 것인데, 그녀가 유독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크고 작은 7개의 가방을 데크에 일렬로 늘어놓고 해변에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두 팔을 좌악 벌린 채 허리를 비틀어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인다거나, 마치 달리기 선수가 트랙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듯한 발놀림과 손동작을 연속적으로 해댔다. 그런데도 힘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럴 수가 있을까. 모자도 쓰지 않고, 두 갈래 머리는 뒤로 따내려 따가운 햇빛에 얼굴을 다 노출시키고. 엄청난 폭염 속이었다.

나는 속으로 속삭였다. 해지기 전에 7개의 가방이 다 팔리기를 빌어요. 햇빛에 온몸이 검게 그을린 당신을 위해 먹장구름이라도 머리 위에 떠 있어 준다면 좋으련만. 그녀여, 부디 건강해요.

나는 앞에 앉은 시인에게 해변의 여자를 보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시인은 말했다. 그녀가 누군인지 알 것 같다고. 월정리 골목 안에서 작은 소품가게를 하는 여자가 맞는 것 같고 지나다 그 가게를 한번 들어간 적도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괜스레 인스타그램에서 그 가게를 찾아보았고, 그녀가 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피드에 올려진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놀랐다. 그리고 이 폭염에 피부를 태우며 노상에서 가방 몇 개를 놓고 파는 그녀의 몸놀림이 주는, 알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 같은 그것, 살랑살랑 무슨 말인가를 건네고 있는 그녀의 자유와 자기 시간을 즐기는 감각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곧 알아챌 수 있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전문가급 오토바이를 모는 라이더라는 사실이었다. 삼십대로 보이는 동영상 속의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어느 포구에 도착하고, 해안의 높은 바위나 방파제 같은 데서 물속으로 날 듯이 다이빙을 하고, 서핑을 하며 매서운 눈초리로 파도를 타고, 농민장터에서 제주 토종 흑보리를 홍보하고, 그리고 두어 평 됨직한 되게 좁은 소품가게 문앞에서 컬러풀한 에스닉 원피스를 뽐내며 손님을 끌고 있었다. 무엇에나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육지에서 먼저 온 친구를 좆아 제주에 왔다는 그녀의 글도 읽었다. 말하자면 제주가 좋아 제주에 이주한 셈인데, 사랑이 사랑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은 자부심이라는 자기중심일 것이다. 제주는 그런 인간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장소성을 뛰어나게 지니고 있다. 제주는 아까운 곳, 오늘도 사랑을 대하듯 당신은 피고 당신은 열려라.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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