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에서 이 한권의 책을] (8)품위 있는 삶
기억과 망각… 후회하지 않는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10. 28(목) 00:00
서로 연결된 듯한 6개 단편
‘… 110세 보험’ 섬뜩한 반전
품위 있는 죽음도 쉽지 않아
‘지옥의 형태’ 속 기억의 선택
결국 마음가짐이 결정하는 삶
“고독에서 사유하라”는 울림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현실과 환상이라는 주제로 다뤄진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로 연결되고 이야기가 완성되는 글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 정소현, 출판사 창비>







▶대담자

▷연미자 : 서귀포 시민의 책읽기 위원

▷이순열 :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단장

▷박정희 :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회원

▷한명희 :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회원

독서토론을 함께하는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회원들이 정소현 소설집 '품위 있는 삶'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서귀포 시민의 책읽기 연미자 위원과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한명희 박정희 이순열씨. 사진=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연미자 (이하 연) : 이 책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렸다. 그중에서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에 관한 이야기에서 각자 느낀 점은?

▷한명희(이하 한) : 치매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은 아버지의 치매로 인해 가족 모두의 삶이 불행해지자 주인공이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치매 안락사 보험에 가입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이런 삶이라면, 이런 보험이라면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녀는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박정희(이하 박) : 주인공 윤승의 삶은'정말 완벽하게 품위 있는 삶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섬뜩할만한 반전으로 충격을 받았다. 윤승은 이미 치매에 걸린 상태였으며 순간순간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30년 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안락사시켰다는 사실을 반추해낸다. 그로 인해 어머니의 자살, 어린 아들의 교통사고, 남편은 떠나버리고 아들과 손자로 알고 있었던 이들도 자녀 역할 특약으로 제공된 보험회사 직원들이었다.



▷연: 주인공이 휠체어에서 발을 헛디뎌 바닥에 떨어지자 무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바닥에 나뒹굴며 우는 척한다. 결국 짜디짠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치매 상태이지만 안락사를 예견한 주인공이 '살고 싶다'라고 떼쓰는 듯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순열(이하 이) : 치매 안락사 보험에 가입하여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하지만,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의 선택이 도리어 미래를 없애버리고 치매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더욱 살고 싶어 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연 : 품위 있는 삶에 대해 평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한 : 품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위엄이나 기품, 미래를 표현할 희망의 단어, 한순간에 생길 수 없는 삶의 궤적이라 한다. 이렇듯 한순간에 생길 수 없는 나이테 같은 품위가 또 한편 어려운 상황으로 무너질 때 가장 내려놓기 쉬운 것이라 한다. 작가는 품위 있는 삶과 치매를 하나의 콘텐츠로 놓고 품위 있는 삶만큼 품위 있는 죽음도 쉽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박 : 반면 율희와 상현 이야기를 다룬 어제의 일들은 망각으로 도리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한 피해자 상현의 이야기다. 여고생 상현은 유부남인 미술 교사와의 추문으로 따돌림당하고 자살 시도를 한다. 이후 가족에게 의절 당하고, 후유증으로 과거의 기억이 희미하고, 새로운 기억도 오래가지 않는다. 현재 작은 주차장 관리 일을 하면서 동화 작가로 살아가던 그녀는 우연히 만나 동창이라며 아는 체하던 율희를 만나지만, 매일같이 와서 과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율희의 이야기는 기억에도 없으니 관심도 크게 없다. "화무십일홍 좋은 날도 더러운 날도 다 지나가 어차피 관 뚜껑 닫고 들어가면 다 똑같아."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처럼 그녀는 지나간 일은 명백히 지나갔으며,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어 이제는 효력을 다한 과거라 말한다.



▷연 : 주인공 율희와 상현은?

▷이 : '나는 1975년 겨울에 태어나 2015년 늦여름에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지옥의 형태'는 죽은 율희의 생각이 삶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는 상현에 대한 앙심으로 선생님과의 스캔들을 지어내 퍼트려 상현과 미술 선생님 두 인생을 망쳐버리지만, 오히려 그 사건에 매여 인생을 망친 건 가해자 율희다.

▷한 : 어린 율희가 '딸'이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후 성장하며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외로움과 고독함, 어딘가 뒤틀린 것 같은 모습으로 늘 새로운 빈방을 찾아 헤매는데 그런 율희가 안타까웠다. 그녀의 인생을 망친 것은 유년기에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의 탓이었을까. 율희는 정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연 : 제목대로 죽은 율희의 과거들이, 특히 부정적인 감정만 상기되는 기억의 연속이 '지옥의 형태'라면 상현의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과 대비되며 삶의 대부분을 부정적인 감정의 방으로 채운 것은 누구의 영향이 아닌 그녀의 선택이 아닐까?

▷박 : 우리는 매일 지나간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 했던 말실수,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의 언행 등 대개는 부정적인 기억일수록 오래 가져간다. 그 사건은 한 번 일어났을 뿐이지만, 스스로 부정적인 기억으로 몇 번이나 다시 경험하며 상처를 키워가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현은 기억이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일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가끔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오랜 시간 사람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과거 자살을 시도했던 상현이 지금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망각이다. 상현이 한 말 중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망쳐지도록 생겨 먹지 않았다는 말은 우리 인생이 타인에게 영향받는 것보다 우리가 선택한 기억, 마음가짐으로 결정된다는 말로 이해된다.



▷연 : 작가는 "고독에서 사유하라"고 말한다.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 : 품위 있는 삶은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이다. 삶의 유한성을 인정 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죽음과 이성적으로 타협해야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품위 있는 삶과 품위 있는 죽음은 나의 몫이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주 올레 오카리나 앙상블 / 독서모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순수한 아마추어 오카리나 동아리로 독서토론을 함께 한다.

1인 1악기 시대에 작은 거위라고 하는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음악의 기본 요소들과 오카리나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을 책과 음악으로 알차게 가꾸어 나간다. 음악과 독서로 함께할 때 빛이 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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