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제주의 아들과 제주의 영웅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입력 : 2021. 10. 14(목) 00:00
2014년 3월 이른 봄날이었다. 금의환향하는 사내를 태운 서울발 비행기가 제주국제공항에 내렸다. 트랩을 내려온 그는 관덕정을 향했다. 관덕정 마당은 제주의 아픈 역사가 켜켜이 서린 곳이다. 제주목관아 옛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가 마이크 앞에 섰다. 단상 앞에는 '어머니! 원희룡입니다. 제 전부를 바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제주를 바꾸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그의 외침에 사람들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그의 꿈과 포부의 종착점은 좁은 섬나라가 아니었다. 선거결과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제주의 아들이 돌아왔다며 가슴을 펴고 사자후를 토하는 그는 마치 로마의 개선장군 시저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 그에게는 '제주의 아들'이란 호칭이 따라다녔다. 제주를 어머니라 부르며 스스로를 제주의 아들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은 다 알고도 남았다. 시험지 정답을 알아맞히는 그의 실력 때문이다.

세상사의 문제지는 녹녹지 않다. 해법이 어려워 정답이 없는 경우도 많다. 도지사 재임 중 가장 뜨거웠던 제2공항건설 문제도 그 하나였다. 지루한 공방을 이어갔던 그의 제2공항건설 밀어붙이기는 찬반 도민 여론조사에서 거부됐다. 그러나 그는 이 거부를 거부했다. 엘리트 의식에 젖은 사람이라는 비판에 그의 대답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반대는 엘리트주의다. 민주적 다수결이 해답은 아니라고 우길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G. J. 가세트가 설파한 엘리트 계급이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대중은 어리석다는 밑자락이 깔려 있다. 영화 ‘내부자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대중은 개돼지라서…"

그는 제2공항을 비롯해 산적한 제주도의 현안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지사직을 사퇴했다. 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치적 징검다리 제주를 건너뛰고 대한민국을 바꾸러 가겠다는 데 누가 말릴 것인가!

사람은 어느 부모에게서 탄생하느냐 보다는 어떤 곳에서 태어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는 공동체가 기억하는 정서를 공유하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공동체 정서는 사회적 느낌이고 모태 기억이기도 하다. 그 기억이 희미해져 버리면 공동체 정서를 공유하기 어렵다. 기억이 살아있어야 서로 어깨를 걸고 공감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모슬봉 기슭 공동묘지에는 신축항쟁의 장두 이재수 어머니의 묘가 있다. 봉분 앞에는 조그만 말각형 묘비가 서있는데, 1940년 3월 안성리·인성리·보성리 대정골 주민들이 세웠다. 앞면에 제주영웅 이재수 모 송씨묘(濟州英雄 李在守 母 宋氏墓)라 새겼다. 대한제국의 평리원 재판에 따라 민란의 괴수로 교수형을 받은 장두 이재수의 주검은 청파(靑坡)의 죄수묘지에 묻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주민중을 위해 분투하다 끝내 생명을 바친 대정군의 관노 이재수는 스물네 살 청년이었다.

신축항쟁 120주년을 기념하는 ‘청년 이재수’ 기획전이 탐라미술인협회 주관으로 11월 30일까지 제주4·3평화재단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영웅 이재수는 100년이 훌쩍 넘어서도 뜨거웠던 그날의 공동체 기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머리 좋은 자칭 '제주의 아들' 이미지에 가슴 뜨거웠던 '제주의 영웅'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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