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사심 없이 그저 시간 낭비할 자유를 위해
김문겸·이일래·인태정의 '여가의 시대'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9. 10(금) 00:00
극한 노동 반작용 여가 대두
여가문화 속 각종 소외 문제

정부에서 발표하는 '국민여가활동조사'가 있다. 2020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여가시간이 평일 3.7시간, 휴일 5.6시간이라고 했다. 88개에 달하는 세부 여가활동 중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항목은 여전히 '텔레비전 시청'이었고 '산책과 걷기'가 그 뒤를 이었다. 일과 여가가 조화된 직장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에선 여가친화기업도 인증한다. 우린 지금 '여가를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문겸 교수가 이일래·인태정 박사와 공저한 '여가의 시대'는 공휴일 제도에서 키덜트 현상까지 살피며 자본주의가 인간의 필수적인 활동인 여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의 다양한 여가문화 속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외도 들여다봤다.

사회제도적 차원에서 여가의 문제는 초기 자본주의 시기 노동시간이 극한적으로 연장됨에 따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에서 1일 8시간 노동제가 채택된 이후 주5일 근무제, 유연근로시간제 도입 등으로 생활시간구조에서 여가시간은 점차 증가했다.

저자들은 여가의 영역도 노동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결핍과 모순을 가져온다는 점을 짚었다. 오늘날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하다는 느낌을 주고 그것은 보수가 낮은 직장에 종사함으로써 즐거움을 추구할 수 없을 정도로 생존경쟁에서 뒤졌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사회적으로 제시된 표준화된 삶의 양식, 즉 이렇게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것이고 가족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프로그램화된 여가소비의 기호가 강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충족을 위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의무처럼 되어버린 해변 일광욕과 스키여행, 에어로빅과 헬스로 상징되는 육체에 대한 강박관념, 똑같은 장소로 몰려드는 행락객들의 혼잡함 등을 떠올리면 된다.

식량기근에 시달렸던 전통사회와 달리 오늘날은 '시간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자유시간의 일 분 일 분 속에서도 진정한 탈출과 만족을 찾는다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하지만 이를 거스르며 사심 없이 그저 시간을 낭비할 자유를 누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슬로우 라이프 등 느림에 대한 미학의 출현,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멍때리기 대회'가 그런 예다. 여가를 통한 일상적 삶의 회복을 위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호밀밭.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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