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32)내 친구는 정원사-임재정
입력 : 2026. 09. 29(화) 02:00
황학주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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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인사해

내 친구 포크레인이야

천천히 혀를 말고 포-크-레-인 해봐

손잡고 돌던 멜로디를, 소녀를

황토밭을 내닫는 소나기를 만날 수도 있지

아-알았네, 이런 얼음덩어리들 하고는

꼭 Rain이 아니면 어때, 근사하잖아

이름만으로도 설렐 친구가 있다는 거



여기저기 장지를 떠도는 일이

꺼림칙했을까, 딸꾹질은

나잇살이나 먹은 목젖을 흔들어 깨우고

목숨은 죽어서도 저마다 구근 한 알인데



소개할게, 이쪽은

꽃나무를 심고 화단을 꾸리는 미스터 포크레인



동행자, 나의 숟가락, 거대한 주걱으로 영혼의 밥그릇

다독이는 이, 일 다 마친 氏가 묘지 한쪽에 쉴 때면 합장한

품새가 좋이 명산대찰 큰스님이라니까



어허, 사람들

어깨들 풀고 인사 좀 놓으라니까

이쪽은 포크레인이야

삽화=배수연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의 표지를 넘기니 검정 사인펜으로 쓴 손 글씨가 나타난다. 2018년 3월 14일에 시인이 내게 보내준 시집이다. 당시 그는 '전기공 시인'으로 소개되었고, 두 번째 시집에서는 전기공이라는 화자가 반복해서 등장하며 노동, 자본, 생계, 인간의 존엄 같은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 시에서도 '포크레인'이라는 기계적 사물을 "내 친구"라 부른다. 땅을 파는 쇳덩어리에 이름을 건네고, 거대한 버킷을 '영혼의 밥그릇' 다독이는 숟가락이라 부른다. 그러자 기계는 기계의 자리를 떠나 꽃나무를 심고 화단을 꾸리는 한 사람, 묘지 곁에 합장하는 한 존재, 숨겼던 얼굴로 깜짝 나타난다. 우리는 노동의 구체성과 사랑, 신체의 감각이 문장 안에서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목숨은 죽어서도 저마다 구근 한 알"인 것이어서 죽음은 다시 피어날 생명이 흙 속으로 잠기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하여 무덤을 파는 포크레인과 꽃을 심는 포크레인이 같은 흙을 만진다. 시인은 노동자의 현실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노동 현장의 사물과 인간을 기묘하게 뒤집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 죽음조차 삶의 바깥에 있지 않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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