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강요된 침묵에 의해 배제된 이들의 삶 기록해야”
입력 : 2026. 05. 15(금) 17:05수정 : 2026. 05. 15(금) 17:11
양유리 기자 glassy38@ihalla.com
15일 제78주년 제주4·3 학술 세미나 ‘기억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한 인간의 생애 뚫고 간 폭력의 흔적 목격… 4·3은 현재 진행 중”
기존 텍스트 중심 기록 보존 한계 지적·‘디지털 아카이빙’ 필요성도
15일 개최된 제78주년 제주4·3 학술 세미나 ‘기억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제주4·3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재현’. 양유리기자
[한라일보] 침묵이 강요됐던 제주4·3의 기억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작업과 이를 후세대에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디지털 아카이빙’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제기됐다.

제78주년 제주4·3 학술 세미나 ‘기억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제주4·3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재현’이 15일 오후 제주4·3평화재단 1층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세미나는 제주언론학회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이날 허호준 리츠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전 한겨레 선임기자)은 ‘나는 왜 제주4·3을 쓰는가: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36년여간 현장 기자로서 제주4·3을 추적해 온 허 연구원은 “기자의 주된 업무는 사실을 찾아 확인하고, 흩어진 조각을 이어 붙여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일”이라며 “조지 오웰이 말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남겨두려는’ 역사적 충동이 내게도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는 기록의 자극제가 됐다”며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하고 왜곡되어온 역사의 편린들을 찾아 진실을 밝히고 공적 기억으로 남기는 일을 위해 30년 넘게 4·3을 붙들어 왔다”고 했다.

또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필요하고,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현재의 우리 공동체를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며 “그러나 진실을 추적·기록해야 할 언론은 강요된 침묵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함께 4·3 가시화가 시작됐다”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떤 목소리를 중심에 둘 것인가, 국가가 오랫동안 만든 프레임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허호준 리츠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전 한겨레 선임기자). 양유리기자
4·3을 직접 겪은 피해자들을 만나며 허 연구원은 4·3이 현재에도 진행되는 일이라고 느꼈다.

허 연구원은 “4·3을 겪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만날 때마다 마주한 것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뚫고 지나간 폭력의 흔적”이라며 “오래 눌러두었던 기억을 꺼내는 순간 그때의 공포와 억울함, 상실감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는 또 4·3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에게 “때로는 질문보다 망설임이 더 중요하고, 말보다 침묵을 견디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억눌린 과거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침묵 속에 있던 사람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또한 언론의 중요한 책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런 폭력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국가폭력이 한 인간의 생애를 어떻게 바꾸는가, 누구의 고통이 기억되고 누구의 삶이 배제되는가 하는 문제들은 아직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그리스내전, 대만 2·28, 오키나와 전투, 보스니아 내전, 과테말라 내전 등 전 세계의 국가폭력 사건과 제주4·3의 연결점을 찾고, 더 넓은 맥락 속에서 4·3을 읽고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경 동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주)트리버스 대표이사)는 ‘기억을 되살리다: AI·XR 기술로 구현하는 제주4·3의 디지털 기억관’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기존의 아카이빙 방식은 텍스트 중심의 단선적 기록 보존에 치중했다”며 “방대한 사료 간의 유기적 연결과 역사적 맥락의 입체적 재구성이라는 현대적 아카이브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이는 기성세대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간 역사인식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과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한 ▷파편화된 4·3 사료 체계적 분류 및 연결을 위한 지식 그래프 구축 ▷훼손·멸실된 역사 자료의 AI 기반 복원 및 시각화 ▷유적지와 연계된 XR 기반 몰입형 역사 체험 콘텐츠 개발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완수 동서대학교 명예교수의 발표 ‘과거 사건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도 진행됐다. 또 고호성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고 강홍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이재승 카카오 지역협력 리더, 고은경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팀장, 송진순 동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윤희각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양동규 작가 등이 참여한 토론도 이뤄졌다.

15일 개최된 제78주년 제주4·3 학술 세미나 ‘기억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제주4·3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재현’. 양유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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