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식의 문연路에서] 제주교육, 정책이 학교를 품어야 한다
입력 : 2025. 08. 12(화) 06:00
편집부기자 hl@ihalla.com
고교학점제·늘봄학교 등
현장서 ‘혼란 가중’ 지속

실적 중심 정책 벗어나야

[한라일보] "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을 힘들게 한다"는 말이 이제는 상투적인 푸념이 아닌, 절박한 외침처럼 들린다. 오죽했으면 교육부 폐지론까지 나왔을까 싶다. 고교학점제, 늘봄학교, 고교체제 개편,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전환 교육, 유보통합 등 여러 정책의 방향에 대해선 교육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그 필요성과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 추진 속도와 방식은 과연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 아쉬운 마음이 크다.

지금 학교는 지쳐가고 있다. 매년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교육정책들 속에서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교사와 학교는 충분한 준비 없이 떠밀리듯 움직이고 있다. 시범학교 운영, 정책연구, 각종 실적 요구 등은 '성과'라는 이름으로 내려오고, 교사는 보고서 작성과 연수, 행정업무에 시달린다. 수업과 생활지도, 돌봄과 상담까지 책임지는 교사에게 지금의 정책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먼저,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 선택권 확대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제주는 다양한 과목 개설이 어려운 읍면지역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교사 수급도 원활하지 않고, 시간표 운영의 한계로 인해 학생 선택권은 형식에 그치기 일쑤다. 오히려 교육격차가 더 심화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늘봄학교'는 전일 돌봄 체제를 지향하지만, 이를 운영할 전담 인력이 부족하고 학교 공간도 넉넉지 않다. 결국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과 학생 안전까지 교사가 책임지게 되고, 수업 준비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학교가 점차 돌봄 기관 역할을 떠안으면서 교육의 중심이 흔들리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AIDT(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사용도 빠르게 추진되다 멈춰 버렸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교육은 교실에서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고, 애초 "AI가 교과서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최근 국회는 AI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AIDT는 여전히 '보조 자료'에 머물며 수업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유보통합과 도내 고교체제 개편' 논의 역시 현장의 준비 없이 속도부터 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반고와 특성화고의 기능 재편이 정말 핵심인가? 멀리 제주의 미래를 바라보며 긴 호흡으로 디자인해야 할 일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역시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한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정책이 방향을 잡기도 전에 현장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학부모는 말한다. "정책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고. 교사는 말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고.

교육은 실적보다 공감, 속도보다 신뢰가 우선이어야 한다. 학교가 정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학교를 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의 진정한 변화는 교실의 숨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오승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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