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석의 한라칼럼] 배려의 역설
입력 : 2022. 12. 27(화)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지하철이나 버스의 노약자석은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함이 있는 교통약자를 위해 마련한 좌석이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교통약자의 이용 편의 증진법' 제15조에 의거해 교통약자 전용석으로 설치되고, 버스의 교통약자 우선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은 법률로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지도로 설치된다. 지하철의 교통약자 전용석은 정해진 교통약자만 앉을 수 있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나라도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처벌 규정이 없고, 버스의 교통약자 우선석은 강제성이 없어 위반해도 불이익이 전혀 없다. 설치 근거가 어떠하든 노약자석은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와 시민의 양보가 전제되어야 올바로 작동될 수 있다.

간혹 배려가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예전 굳이 노약자석을 지정하지 않더라도 노인과 약자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던 관습이 사라지고, 노약자석이 아닌 자리에서는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 의식이 자리 잡았다. 노인을 위한 자리는 노약자석에 한정되고, 결국 노약자석은 배려석이 아니라 배제석이 된다.

또한 배려가 양보를 강제하는 경우도 생긴다. 임산부는 일시적 교통약자로서 교통약자석의 대상이지만 교통약자와 별도로 임산부 배려석을 설치하여 사회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이는 기존 노약자석 보호 대상에서 임산부 배려의 한계와 저출생 시대 모성보호를 함께 고려한 조치이다. 그런데 임산부가 제대로 배려받지 못한다고 판단해서인지 광주지하철에서는 임산부 배려석 위에 감지센서가 설치돼 '임산부가 아니라면 자리를 비워 달라'는 음성 메시지가 나오고, 부산 지하철에서는 임산부가 발신기를 소지하고 지하철을 타면 임산부 배려석의 수신기가 깜빡이며 음성안내가 나오는 '핑크 라이트'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해묵은 논쟁은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문제이다. 무상급식, 아동수당, 코로나19 전 국민 지원금 등에서 복지 혜택을 모두에게 제공해야 하는지 아니면 취약계층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배려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다. 복지 서비스나 배려는 대상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배려의 대상이 서로 분열되고,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면 배려는 오히려 차별이 된다.

배려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사회 분위기가 선행돼야 하는 문제이다. 노약자를 존중하고 임산부를 배려하며 어려운 사람에게 마땅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윤리와 문화의 영역이다. 배려를 법과 시스템으로 강제하기 이전에 배려의 문화를 교육·홍보해야 한다. 달랑 노약자석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노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사회는 경쟁이 아니라 배려로 유지되고, 배려가 차별이 아니라 공존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힘은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다. <문만석 (사)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법학박사·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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