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41)노인들의 병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7. 05(화) 00:00
[한라일보] 비상 등빛을 깜박이며 응급의료센터 문 앞에 119구급차가 한 대가 서 있다. 주황색 복장을 한 이송 요원이 차 문을 열어놓고 대기하고, 조금 있자니 구급차 옆에 다른 구급차 한 대가 와 나란히 선다. 나중에 온 구급차는 사설업체의 차량이다. 나는 병실 창가에 기대어 우두커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먼저 와 있던 차의 들것에 앉은 상태로 환자가 내리고, 조금 뒤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가 들것에 누운 채 실려나와 사설업체의 구급차에 탄다. 들어간 환자도 나온 환자도 노인이다.

나는 대장내시경에서 용종이 발견돼 시술을 했고, 출혈이 있어 하루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실 안엔 모두 노인들이다. 노인의 나이를 몇 살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자주 화제가 되는 사회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어쨌든 나는 스스로 노인축에 든다는 생각이 들고, 병실에 있는 다른 3인도 내 눈에는 노인들이다.

병실마다 노인들이 많다. 문제는 노인들의 병실 풍경이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노인들의 표정과 행동에 검은 그림자가 짙고 마냥 암울해 보인다. 화장실을 오가다 마주쳐도 인사조차 없다. 하루를 같이 잤으나 서로 말을 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지나치다가 내가 먼저 목례를 하는 정도이다.

젊은 사람이 아픈 것과 나이 든 사람이 아픈 것은 같을 수가 없다. 노인은 회복이 더디고 대부분의 병은 낫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환자보다 병원 환경이 더 비참한 마음을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 노인의 병실은 달라야 한다. 노인이란 병의 경중(輕重)을 떠나 병실에서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조건인데 작은 친절함이라도 베풀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말동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엔 좋은 병원이 없다. 이름난 병원들이 있고 소위 명의로 알려진 의사들이 있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환자의 입장에서 좋은 병원, 가고 싶은 병원은 사실상 없다. 환자 네 명의 공간은 커튼으로 가려지고, 침대 하나와 코딱지 만한 테이블 하나가 전부이다. 거기선 사실상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는 게 용이하지 않다. 한쪽 팔에 수액을 꽃은 채 화장실 세면대 위에 걸린 샤워기로 머리를 감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마저 불가능하니 머리는 봉두난발하고, 꼴들은 말이 아니어 구치소에 가깝다.

소노 아야코는 계로록(戒老錄)에서 '받은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이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라고 봤다. 인사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자. 옆 사람에게 말 한번 붙여주는 것도 못 한다면 노인의 자격이 없다. 모두들 아프다. 그렇지만 아직도 줄 게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자. 그리고 제발 돈 벌 생각만 말고 병원 환경 좀 개선해 달라. 이게 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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