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 마을탐방] (1)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천미천 굽이 따라 묵향이 감도는 유림의 마을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입력 : 2021. 08. 10(화) 00:00
유림들이 모여 시문 짓고 학문 닦던 곳 ‘관창대’
잃어버린 소 찾고자 기도 올리던 쉐당 ‘자운당’

신풍리 옛 이름 딴 ‘웃내끼 산신당’은 마을 명소
“아름다운 벚꽃길 가꿔 다양한 콘텐츠 만들 것”

무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폭서의 한복판을 뚫고 멀리 신풍리를 향했다. 네비게이터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사이 어느덧 성읍민속마을을 거쳐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켠 뒤 커브를 틀고는 자못 놀랐다. 도로 양옆으로 웃자란 나무들이 아치를 그리며 터널처럼 길게 늘어선 것이 아닌가. 때마침 소나기까지 내리며 나무 그늘과 합작해 더위를 식혀주니 금상첨화다. 천천히 달리며 과연 어떤 나무들인가 살폈다. 갓길을 신록으로 물들인 주인공은 벚나무였다. 길게 뻗은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남산봉로의 환상은 마을회관에 다다를 때까지 더위와의 극적인 이별을 맛보게 해줬다.

관창대. 사진=한진오(극작가)
제주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진 천미천 자락의 평원에 자리 잡은 신풍리는 안온한 품을 열어 나그네를 반겨줬다. 여정에 동행한 성산지역 마을활동가와 함께 신풍리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마을을 둘러보러 나섰다. 마을의 자랑 관창대로 안내해주겠노라며 선뜻 길잡이로 나선 이장님과 함께 천미천이 꿈틀대며 굽이져 가는 천변을 향했다.

관창대는 이 마을의 오랜 전통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유서 깊은 명소로 신풍리의 깊은 내력은 물론 묵향이 넘치는 유림의 고장을 증명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삼현 체제로 행정편제를 유지할 당시 신풍리와 가까운 성읍리 소재 정의현에서는 성산 일대의 여섯 마을을 좌유면(左儒面)과 우유면(右儒面)으로 나눠 유학을 장려했다. 좌유면에는 오조리, 고성리, 수산리가 속했고, 우유면에는 신풍리, 삼달리, 난산리가 포함됐다. 관창대는 바로 우유면의 세 마을 유림들이 한 데 모여 시문을 짓고 세상사를 공론하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천미천 자락의 커다란 팽나무 그늘 밑에 둘러앉은 옛사람들을 상상하면 묵향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느낌이 든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관창대에 번듯한 정자를 짓고 시비(詩碑)까지 세워놓아 운치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천미천의 풍광을 빌려 선비의 면학을 읊어낸 의청선생묵적시비(毅淸先生墨蹟詩碑)는 신풍리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 오문복 선생의 조부가 남긴 시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자운당
관창대 바로 앞 냇둑 너머엔 이 마을의 신당 중 한 곳인 '자운당'이 자리해 있다. 달리 '쉐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당은 1만8000 신들의 고향이라는 제주에서도 매우 희귀한 곳이다.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인 소의 안위를 기원하는 곳이어서 쉐당이라고 불리는데 현존하는 제주의 쉐당은 신천리 자운당을 비롯해 성읍2리 윤남동산 쉐당, 난산리 골미당, 행원리 장통밧 쉐당 정도에 그친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당들의 공통점을 곧바로 알아차릴 만한데 모두 제주의 동부지역에 분포해 있다. 서촌, 즉 제주의 서부지역과 달리 산간 방목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동촌에서는 마을마다 테우리 한 사람이 평균 4~50마리의 소를 관리하는 생업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이럴 때면 소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곳이 쉐당이다. 이밖에도 소가 병 들었을 때나 새로 매입할 경우 건강한 소를 얻게 해달라고 기원하러 드나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경운기로 대표되는 농업기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소의 효용이 농우에서 육우로 바뀌며 쉐당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신천리 자운당도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신앙이 유지되었지만 근래에는 명맥을 잃어 가시덤불에 뒤덮이고 말았다.

신풍리 본향 웃내끼 산신당
이 마을에는 자운당과 더불어 본향당신 '개로육서또'를 모시는 '웃내끼 산신당'이 있다. 웃내끼는 신풍리의 옛 이름이다. 웃내끼 산신당은 이 마을의 대표적인 콘텐츠 중 하나인 전통혼례가 치러지는 '어멍 아방 잔치마을'의 전통가옥을 거쳐 가는 길에 있다. 2000년대 초반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어멍 아방 잔치마을은 누구든 신청을 하면 전통혼례를 치러주는 체험사업이다. 마을 안에서도 인기가 높아 오랫동안 해로한 어르신들의 금혼식도 자주 치러진다고 한다.

혼롓날 풍성한 잔치마당을 떠올리며 풍천초등학교의 옛터 너머 작은 숲으로 들어서면 던데못이라는 연못가에 우뚝 선 비석과 맞닥뜨린다. '도운대(道韻臺)'라고 쓰인 커다란 비석 옆에는 시비(詩碑) 하나가 나란히 서 있다. 구한말 만고의 충신이며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면암 최익현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제주 유배를 마치고 떠날 채비에 하던 최익현이 신풍리를 지나던 길에 유학의 도를 담은 과신풍촌(過新豊村)이란 제목의 시를 남긴 것을 만대에 전하려고 세운 것이다. 도운대 너머 작은 숲속에 제주 특유의 돌집으로 지어진 본향당의 상서로운 기운은 유교와 무속의 묘한 앙상블을 자아낸다. 지금은 신앙이 많이 쇠락해 찾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신성한 기운은 사위지 않은 채 숲 전체를 신비롭게 감싸고 돈다.

강인식 이장
오랜 전통과 자랑거리가 많은 신풍마을의 강인식 이장은 느긋한 말투와 달리 신풍리를 내외에 알리는 일에 가쁜 숨을 내쉬며 무던히도 달려가는 인상이다. 서귀포시가 마련한 자립베스트 마을사업이며 해양수산부의 특화단위 마을사업에도 응모하는 등 쉴 새 없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부심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어멍 아방 잔치마을 등이 성황을 이뤘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춤한 상황입니다. 이 위기만 잘 넘기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어야죠." 그는 무엇보다 3㎞에 이르는 남산봉로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제주도에 여러 곳의 벚꽃길이 있지만 신풍리만큼 빼어난 길은 없다고 봅니다. 꽃이 필 무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길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길을 더욱 아름답게 관리해서 우리 마을의 자랑으로 삼고 싶습니다. 전도민이 사랑하는 벚꽃길이 된다면 자연히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이고, 벚꽃길을 영원히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운대
강인식 이장의 말을 되뇌며 봄날이면 하얗게 흐드러질 벚꽃을 그려본다. 꽃멀미에 흠뻑 취할 그 길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시가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벚꽃길을 걷는 것은 꽃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꽃과 점점 헤어지는 것이라는….

글·사진=한진오(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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