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플러스] 코로나 속에도 설날은 다가온다
설 유래는 역법 제정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
일제 강점기 음력설 억압해 양력 1월 1일 지내기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년과 다른 풍경 전망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입력 : 2021. 02. 05(금) 00:00
/사진=한라일보DB
코로나19로 세상이 큰 난리를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족최대의 명절 '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해는 예전처럼 일가친척이 모여 세배를 하고, 명절 음식을 나눠먹는 풍경을 볼 수 없지만, 설날이 다가오면 설레는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부디 2021년 신축년(辛丑年)에는 코로나19가 수그러들기를 바라게 된다.

▶설날의 유래=사실 설날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설날이 음력 1월 1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유래가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유추하면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전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 중국 역사서 '수서'와 '구당서'에서 만날 수 있다.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왕권 국가인 신라의 설 관습을 기록한 것이다.

한 해 첫 달인 정월은 각별히 여겨졌다. 신라에선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를 풀어줬으며, 고려에서도 왕이 천지신과 조상신에 제사를 지내는 세시의례가 이어졌다. 또 고려시대 왕은 관리에게 7일간 휴가를 주고, 신년축하 예를 올리는 신하를 위해 잔치를 열었다.

고려에서 자리를 잡은 설의 세시풍속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이 시기 나온 '동문선' 등의 문집에는 정월 초하루 새해 인사, 연하장 보내기, 악귀를 쫓는 부적 붙이기 등 여러 모습이 담겼다. 오늘날 설 풍속과도 비슷하다.

아울러 옛 사람들은 설이면 몸가짐을 더 삼가고 조심했다. 액운을 연에 실려 날려보내고, 한데 어울려 윷놀이, 널뛰기 등의 놀이도 즐겼다. 묵은 때를 버리고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로 떡국을 먹고, 복을 기원하며 복조리를 걸어두기도 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양력 1월 1일이 설이 되고,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쇠는 것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음력설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맘때면 어김 없이 민족 대이동이 이뤄졌다. 이에 정부는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정했고, 1989년엔 설날이란 이름을 되찾게 됐다. 그해부터 설은 지금과 같은 사흘간의 연휴로 이어지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른 설 풍경=정부는 코로나19 확신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2.5단계·비수도권 2단계)'를 설 연휴 마지막 날(14일)까지 연장했다. 이에 따라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도 유지되면서 직계가족이라도 주소지가 다르면 예외 없이 적발 대상이 된다. 과태료는 10만원이다.

이로 인해 제주에서도 '정월 멩질'의 분주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준비해 둔 설빔을 입고 멩질을 먹으러 다니는 대신 집에서 가족과 조촐히 멩질을 지내게 된 것이다. 또 집안 세배가 끝나면 가까운 어른을 찾아가 새해 인사를 건네는 풍경도 보기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 속에 현재 세상을 휩쓸고 있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하루라도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추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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