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큰굿이 말해주는 천지창조의 제주 역사
입력 : 2011. 09. 29(목) 00:00
큰굿은 한류의 고대사이며, 탐라사를 재미있게 이야기로 들려주는 장편 서사시이다. 제주 큰굿의 초감제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말해주는 창세신화이며, 제주사람은 고량부 삼신인을 탐라왕으로 세워 어떻게 나라를 세웠는가를 글이 아닌 말로 들려주는 탐라국 건국시조신화다. 낮도 이레 밤도 이레 두 이레 열나흘 동안 연행되는 큰굿은 10년에 한번 볼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정말 굉장한 구전의 역사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옛날 세상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왁왁한 어둠이었다. 하늘과 땅의 어둠을 열고,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과 땅은 떡시루의 떡칭 같은 금이 생겼다. 금이 간 어둠 속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 솟아나 하늘과 땅은 갈리고 세상이 생겨났다. 이 땅을 '탐라'라 하였다. 맨 처음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은 날개를 치고, 천황닭은 꼬리를 쳐 우니, 동녘으로 '탐라의 첫 새벽'이 밝아오자, 낮에는 해가 둘 떠 사람들은 타 죽고, 밤에는 달이 둘 떠 얼어 죽었다. 하늘나라 천지왕은 낮에는 해 하나 쏘아 동해바다에 바치고, 밤에는 달 하나 쏘아 서해바다에 바치자, 그제야 세상은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

세상에 질서를 잡는 일은 끝이 없었다. 천지왕은 땅에 내려와 땅의 여신 총명부인을 만났다. 총명부인은 천지왕에게 밥을 지어 대접하였다. 인간 세상에 인간의 음식, 밥을 짓는 법이 생겨나고 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피어올랐다. 천지왕과 총명부인 사이에선 마음씨 착한 대별왕과 마음씨가 나쁜 소별왕이 태어났다. 원래 천지왕의 계획대로 마음 착한 대별왕이 이승을 다스리게 되었다면, 세상의 질서는 바로 잡힐 수 있었을 텐데, 마음씨 나쁜 동생이 꽤를 부려 이승을 차지해버려 결국 세상은 살인, 강간, 도둑이 많은 무질서한 세상이 되었고, 마음 착한 형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맑고 공정한 세상이 되었다.

큰굿은 소별왕이 다스리는 무질서한 이 세상을 저승의 맑고 공정한 법으로 신길을 바로잡는 법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탐라인들은 한라산에서 솟아난 삼신인(三神人) 고량부 세 성인(聖人)을 왕으로 모시고 AD 65년 영평 8년에 세상을 열었다 한다. 초감제 때, 굿하는 날짜와 장소를 설명하는 '날과 국 섬김'에 보면, 폭넓게 주변 나라들과 교역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의 고대사다. 달단국, 해토국, 이스라엘, 안남국, 몽고 등 12제국, 사해 안팎의 열두 나라 그리고 중국, 일본, 우리나라 해동조선국의 8도와 일 제주, 이 거제, 삼 진도, 사 남해, 오 강화, 육 완도 큰섬들, 그리고 제주 절도 400리, 물은 황하수, 산은 한라산의 소림당, 어승생, 단골머리, 아흔아홉골, 99곡은 한 골 없어 곰도 왕도 범도 신(臣)도 못난 섬, 저 산 앞은 당도 오백, 이 산 앞은 절도 오백이 있는 섬으로, 조선 영천 이형상 목사 시절 당도 500, 절도 500 파괴시키던 섬이라 서술해 나간다.

이 탐라국은 영평 8년, 을축 3월 열 사흘, 자시(子時)에 고의 왕이 나고, 축시(丑時)에 양의 왕 나고, 인시(寅時)에 부의 왕 태어나, 고량부 3성이 모은골(毛興穴)서 솟아난 나라. 삼 고을 사 관장을 마련하던 섬의 아무게 집에서 굿을 한다고 읊어나간다. 그러므로 큰굿은 태초의 시간부터 현재 바로 이 시간까지 신화의 세계와 역사의 시간을 모두 이야기해주는 제주역사다.

<문무병 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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