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큰굿 보유자 이중춘 옹 하늘나라에 가시다
입력 : 2011. 05. 12(목) 00:00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저승, 열 시왕(十王)이고, 심방이 죽어서 가는 곳은 하늘옥황 삼천천제석궁 삼시왕(三十王)이라 한다. 조용하지만 정말 큰 사건이었다. 5월 5일 음력 4월 초사흘에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 <영감놀이>와 제13호 <큰굿>의 보유자였던 큰심방 이중춘 옹이 향년 여든세에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큰심방이었으므로, 무조신(巫祖神) 초공 '젯부기 삼형제'가 다스린다는 하늘 옥황 천제석궁에 가셨을 거다. 그는 구좌읍 행원에 사셨으므로 행원 어른, 행원 삼촌으로 불렸고, 심방 중에 제일 큰심방이란 의미에서 도황수로 칭송되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동쪽 하늘 올레에는 큰심방 옛선생들이 삼시왕길을 닦고 있었는지, 연물소리 요란했고, 소미가 뿌리는 하얀 나비 하올하올 날고, 이중춘 삼촌은 나비다리(白蝶橋)를 건너는 듯했는데 어두운 밤 비구름이 나비다리 가리고 견우성은 우리들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뒷날은 서순실 누이한테서 기별이 왔다. 삼촌이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이 시대의 심방 큰 어른 이중춘 옹은 타계하셨다. 그는 1932년 11월 3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서 태어났고, 무업에 종사한지 50년을 넘는 원로 대심방이셨다. 그의 집안은 행원에서 조상대대로 큰심방을 배출한 25대째 외가쪽으로 이어져오는 세습무다.

그는 어머니가 굿 하러 갈 때면 따라가 굿을 배웠고, 굿판에서 듣게 되는 연물소리나 본풀이는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와 이모와 다니며 굿을 배웠는데 굿을 안 하면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팠고 병원도, 약도 듣지를 않았다. 그러나 굿을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이 건강해지곤 했다. 그는 (고)안사인씨등 큰심방들이 하는 굿판을 쫓아다닐 때부터 큰심방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모시고 있는 명도는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명도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은 명도다. 그는 당주맞이를 비롯한 큰굿의 1인자지만 특히 해녀들이 바다에서 작업하다 놀랠 경우 하는 "추는굿"에 영험하기로 자타가 공인을 한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제주굿에 대한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시켜주고 싶어 했는데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큰굿>과 <영감놀이>는 20년전부터 김녕의 서순실씨가 제자로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제 이중춘 삼촌이 갑작스런 임종을 접하며 큰굿을 비롯한 제주의 무형문화재 전승의 위기를 실감한다. '무당서 3000권'으로 전해오는 저승법을 15일 동안 풀어내는 신굿, 심방집 큰굿은 앞으로 누가하며 누가 대를 이을 것인가? 다행히 이중춘 심방이 했던 큰굿을 채록한 자료 "1986년 10월 13일(음력 9월 10일)부터 10월 26일(음 9월 23일)동안의 14일과 10월 29일 가수리까지" 15일간 연행되었던 신촌리 김윤수 심방집의 신굿,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부터 동김녕리 서순실 댁에서 8일 동안 굿, '삼석울림' 때부터 마지막날 '돗제'가 끝날 때까지" 비디오 채록을 하였고, 그 자료를 정리하고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큰굿 자료가 서순실, 정공철과 같은 젊은 심방들을 통해 이중춘 옹이 살았을 때 그가 큰심방으로 배워준 심방집 큰굿 두이레 열나흘굿을 복원하는 것만이 후학들의 해야할 공부요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해본다.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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