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4·3 유해발굴 단상(斷想)
입력 : 2011. 03. 10(목) 00:00
엊그제 60년 만에 유전자 감식을 통해 4·3사건으로 희생된 48구 유해의 신원이 확인 발표됐다. 이로써 5년여에 걸쳐 국가예산으로 진행된 집단 암매장 유해발굴사업이 일단락됐다. 그동안 발굴된 유해는 화북지역 11구, 제주국제공항 383구, 남원읍 태흥리 1구 등 총 395구이다. 이 중 71구의 유해가 DNA 검사 결과를 거쳐 신원이 확인됐다.

공항 유해발굴을 책임졌던 필자로서 실로 감격스런 진실 확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공항은 제주도민에게 4·3의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눈앞에 지친(至親)이 묻혀있는 곳을 알면서도 시신을 거두어드리지 못한 불효 불경의 후손들에게 공항은 회한의 땅이요 금기의 영역이었다. 예비검속과 군사재판으로 희생된 섬땅 선조들을 이제야 양지로 모시게 되어 후손된 도리를 조금이라도 한 듯하다.

2만 명이 넘는 4·3희생자 가운데 행방불명인들은 진실 규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운의 군상들이다. 오랜 세월 4·3 행방불명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부모나 형제의 사망일자 및 장소, 시신수습 여부 등을 전혀 알지 못해 제삿날도 정하지 못하고 시신도 없는 헛무덤(虛墓)를 써왔다. 연좌제의 질곡은 이들 유가족에게 이중 삼중의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기에 4·3 유해발굴사업은 땅 속에 파묻힌 진실을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하며 유가족들을 해원하는 디딤돌을 놓은 작업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유해발굴을 통해 그동안 바다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던 서귀포 예비검속 희생자들이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땅에 묻혀버린 4·3 학살 암매장의 역사적 진실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2003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이후에 새로이 드러난 추가 진상조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듯 4·3 유해발굴사업은 아직도 불분명한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가 밀도 있게 체계적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500명 가까운 북부지역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유해가 확인되지 않은 점은 매우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항 내 다른 암매장지에 대한 추가 확인 조사 및 발굴은 남겨진 과제이다.

지난 5년간의 집단암매장 희생자 유해발굴을 마치면서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공항 1차 발굴 당시 1만 평방미터가 넘는 넓은 땅을 빈틈없이 파들어 가면서 확인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맨 먼저 굴착했던 곳에서 암매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2차 발굴에서도 처음 굴착했던 곳이 어김없는 암매장 지점이었다. 2차 발굴 때에는 굴착 초기에 현장 발굴을 지휘한 고고학자가 250구의 유해를 안고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발굴 유해 수와 거의 일치하는 결과가 나와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적인 감응이 느껴지는 숙연한 결과였다.

또한 제주국제공항은 국가의 최고급 보안시설이기 때문에 감히 들어가서 발굴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장소였다. 마침 소형항공기의 출현으로 쓰지 않던 남북활주로를 활용하게 되면서 주변 부지에 대한 발굴허가가 나온 것도 하늘이 내린 기회가 아니었나한다. 제주국제공항 관리공단 관계자들의 관심과 배려가 없었다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낸 4·3연구소 연구원, 고고학과 체질인류학 전공자들, 유해 감식을 담당한 제주대 법의학교실, 서울대 의대 모두 이번 유해발굴의 주인공들이라고 하겠다.

<박찬식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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