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큰 별은 지고, 백호는 끝내 울음을 멈추리라
입력 : 2010. 12. 09(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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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살면, 정한 목숨(定命) 값은 다했다고 여생(餘生)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70세는 지나야 살아야 할 남은 인생을 여생이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살아온 삶과 살아야 할 인생을 계산해 본다. 가치를 담아서.
2010년 경인년, '흰 호랑이의 해' 12월9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12월5일날,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홀로 우뚝 서 계셨던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많은 추모 인파가 세브란스병원에 모여 들고 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다른 큰 별들도 졌지만, 선생님의 운명은 청춘을 선생님의 영향 속에 보냈던 우리 세대들에게 더욱 가슴에 사무친다. 우리도 바다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조문을 갔을 텐데. 멀리서나마 선생님을 책과 글을 통해 배웠고, 선생님을 흠모했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의 정표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하여 목요논단을 빌어 글을 쓴다.
큰 별이 지는 세모에, 내 인생의 청년기에 나를 이끌어 주시던 리영희 선생님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삶을 생각해 본다. 나는 1950년 경인년에 태어났고, 2010년 경인년 세모에 환갑의 초년생으로 죽음이란 '왁왁한 어둠'이 인생의 시작이란 것을 배운다. 결국 나의 인생이 어둠을 헤치고 광명을 찾아 헤매는 삶이었다면 나의 청년기, 숨어서 책을 읽던 암흑시대의 촛불 중 하나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 논리'였으며, 그 당시 판금 금서 목록 중 첫째였던 이러한 교과서를 통해 소위 의식화 된 문화운동 1세대 촌놈이었다. 그러므로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던 나의 스승은 리영희 선생과 그의 금서 '전환시대의 논리'였으며, 내가 그려온 큰 그림 속에는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을 오늘 새삼 느끼며 남은 인생 '여생'을 생각하는 시간을 독자들과 같이 갖고 싶다.
그리고 세계와 사회 분단의 현실을 일깨워준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달라졌으며, 제주 촌놈은 다시 같은 제주 촌놈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을 통해 제주의 예술을 배웠고 나의 뼈속까지 물들인 것은 제주바람을 통해 성숙하였다. 그리고 바람 속에는 끝없이 신바람을 일으키는 굿 소리가 들려왔다. 리영희 선생의 몇 권의 금서 그리고 몇 번의 회의와 술자리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덕담과 한겨레신문 국민주 모금운동에 참여하면서 열심히 읽었던 한겨레신문의 선생의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논리로 완성된 사설 속에 번득이는 이성의 글들이 지금 나의 감성을 키워준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분명 나는 암울한 시대 돌밭에 뒹굴며 제주 바람 속에 자라났다. 청년기 나는 80년대 마당굿운동, 4·3연구소 창립, 전국민예총 창립, 전교조 해직 등 여러 가지 수난이 있었다. 어쩌면 리영희 선생님의 다섯 번의 투옥, 두 번의 교수해직 등을 통해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내가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큰 별 리영희 선생을 보내며 남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큰 별은 지고 백호는 끝내 울음을 멈추겠지만, 내가 태어나며 울부짖은 백호의 울음이 암흑을 깨는 탄생의 의미였다면,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희망의 빛으로 왁왁한 어둠을 깨버리는 마지막 울음을 기다린다. 통일된 세상을 향한.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민속학자>
큰 별이 지는 세모에, 내 인생의 청년기에 나를 이끌어 주시던 리영희 선생님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삶을 생각해 본다. 나는 1950년 경인년에 태어났고, 2010년 경인년 세모에 환갑의 초년생으로 죽음이란 '왁왁한 어둠'이 인생의 시작이란 것을 배운다. 결국 나의 인생이 어둠을 헤치고 광명을 찾아 헤매는 삶이었다면 나의 청년기, 숨어서 책을 읽던 암흑시대의 촛불 중 하나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 논리'였으며, 그 당시 판금 금서 목록 중 첫째였던 이러한 교과서를 통해 소위 의식화 된 문화운동 1세대 촌놈이었다. 그러므로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던 나의 스승은 리영희 선생과 그의 금서 '전환시대의 논리'였으며, 내가 그려온 큰 그림 속에는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을 오늘 새삼 느끼며 남은 인생 '여생'을 생각하는 시간을 독자들과 같이 갖고 싶다.
그리고 세계와 사회 분단의 현실을 일깨워준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달라졌으며, 제주 촌놈은 다시 같은 제주 촌놈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을 통해 제주의 예술을 배웠고 나의 뼈속까지 물들인 것은 제주바람을 통해 성숙하였다. 그리고 바람 속에는 끝없이 신바람을 일으키는 굿 소리가 들려왔다. 리영희 선생의 몇 권의 금서 그리고 몇 번의 회의와 술자리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덕담과 한겨레신문 국민주 모금운동에 참여하면서 열심히 읽었던 한겨레신문의 선생의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논리로 완성된 사설 속에 번득이는 이성의 글들이 지금 나의 감성을 키워준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분명 나는 암울한 시대 돌밭에 뒹굴며 제주 바람 속에 자라났다. 청년기 나는 80년대 마당굿운동, 4·3연구소 창립, 전국민예총 창립, 전교조 해직 등 여러 가지 수난이 있었다. 어쩌면 리영희 선생님의 다섯 번의 투옥, 두 번의 교수해직 등을 통해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내가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큰 별 리영희 선생을 보내며 남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큰 별은 지고 백호는 끝내 울음을 멈추겠지만, 내가 태어나며 울부짖은 백호의 울음이 암흑을 깨는 탄생의 의미였다면,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희망의 빛으로 왁왁한 어둠을 깨버리는 마지막 울음을 기다린다. 통일된 세상을 향한.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민속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