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전곡리와 제주문화
입력 : 2010. 12. 02(목) 00:00
달포 전에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 다녀왔다. 전곡리는 한반도 중심의 한탄강이 가로지르는 휴전선 철책을 가까이 둔 곳이다. 지난 1978년 이 곳에서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시대의 주요 유물인 주먹도끼 등 찍개와 긁개 등이 발견됐다. 1979년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8500여 점의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됐다. 발굴 유물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 때문에 전 세계 선사문화 전문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도 1979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여 체계적인 보존 및 기획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는 이러한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2005년부터 이 곳에 세계적인 구석기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국비 161억원, 도비 311억원 등 총 47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건립사업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내년 5월이면 개관할 예정이다. 박물관 공사 현장 곳곳을 안내한 현장 책임자는 예전 발굴에 직접 참여했던 고고학 전문가였다. 그로부터 참으로 신선한 자극을 받았기에 몇 가지 밝혀두고자 한다.

우선 박물관 건축에 관련해서 국제설계 공모를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48개국 346팀이 응모한 작품 가운데 프랑스 X-TU의 건축전문가 아눅 르졍드르의 작품이 당선돼 현재의 아름다운 건물 외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당선작은 건축물에만 한정하지 않고 내부 전시 내용 및 시설에 관련된 구상도 함께 담겨진 것이었다. 한국의 국·공립 박물관 및 전시관이 내부의 전시는 외면한 채 건물의 형체만 완성해 버리는 상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제주의 4·3평화기념관 건축 때 건물과 전시가 따로 놀았던 시행착오가 떠올랐다.

다음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국비·도비 예산을 확보한 것도 중요했지만, 경기문화재단이 이 사업을 주관했다는 점이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1995년 민선 1기 이인제 도지사가 3년 간 90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며 출범한 경기문화재단은 전통문화와 공연예술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를 거느린 막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현재 경기도내 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등의 관리 운영은 경기문화재단의 몫이었다. 제주자치도의 문화예술재단과 문화진흥본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본다.

경기문화재단이 중심이 되었기에 고고학과 미술 전문가가 전곡리 박물관의 건축 및 전시를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현장을 지휘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뜻밖에도 박물관의 전시업체로는 제주의 (주)비엠비가 입찰경쟁을 통과하여 당당하게 전시공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참으로 뿌듯한 일이었다. 이 업체는 4·3평화기념관 전시에도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 사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현장의 전문가들도 치밀한 작업 과정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곡리 박물관 공사 현장을 나오면서 제주도의 문화계 현실은 어떤지 되새김질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행정공무원으로 수북히 쌓인 공립박물관과 전시관, 각종 사적지. 400억 원이 투입된 4·3평화기념관은 공무원의 겸직에 내맡겨진 채 제대로 된 기획전시 한 번 치르지 못하고 있다. 문화예술재단을 통 크게 키우려는 내부역량은 우리에게 갖추어진 것인지. 떡반 나누는 문예진흥기금 운영에만 머물러버린 재단의 소극적 행태를 제주의 문화인들이 모두 성찰해 볼 일이다.

앞으로 항파두리 유적 발굴, 제주성터 발굴 및 복원, 고산리 선사유적의 본격 정비 사업 등 제주의 문화자원은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들 자원을 보석으로 가꾸고 활용해 나갈 사람들이 자신들이 발굴한 자원과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제주의 문화 미래는 어둡다고 감히 진단해 본다. <박찬식 역사학자>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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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킴이 12-07 05:21삭제
교수께서 이제라도 옳바른 지적을 하시니 참 반갑습니다.
제주도에 10여 년 살면서 "제주에는 원로 또는 지식인층"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지역 사회임에도 원로분들이 나서서 또는 지식인층이 나서서 마땅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 산적한데도 아무도 나서는 이 없는 제주도에 많은 실망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적자면 한이 없을 듯 싶어 요점만 적겠습니다.

교수께서 지적하신 위의 내용 중에서만 질문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위 기사에서 지적하신 내용은 교수께서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위치에 계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1. 항파두리 문제
...1978년 조성 당시는 급조하느라 고증을 못했다 하더라도
그 후 30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 도내에 역사학이나 고고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 분들은 어찌하여 항파두리를 저 모양으로
방치하셨습니까? 내성이 더 넓게 쌓였어야 하고, 삼별초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 조각들이 널부러져 딍구는 것, 김통정 장군 모친의 묘로 추정되는 "종신당"이
농부의 무지함에 파 헤쳐져 유물들은 종적도 모르는 상황 등을
무슨 이유로 교수께서는 알면서도 방치하셨느냐는 질문입니다.

2. 제주 성터 발굴 및 복원
...오현단 남쪽으로 제주성터를 복원했습니다. 치성도 없이 복원한 게 성터입니까?
여염집 담장같이 쌓은 게 성터라고 보지는 않스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잘못 복원된 사실을 알면서 왜 바로잡는데 앞장서지 못하셨는지요?
일반 서민들은 몰라서도 못하지만 교수께서는 잘못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고 오늘까지 오신 것은 학자적 양심에 의심을 해 봐야 할 사안이라 여깁니다.

3. 고산리 선사유적
...제주대학에 1984년인가 고고학과가 생겼다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교수께서 고고학자는 아니시라도 고산리 선사유적지를 지금처럼 허허벌판으로
두기 보다는 그곳에서 출토한 유물들로 작은 전시관이라도 짓자고 건의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우리같은 무지랭이 서민들이 나서봐야 누구하나 들어줄 이
없지만 교수 또는 도내 관련 지식인층 분들은 왜 그런 것에는 관심을 안 갖던지
또는 외면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입니다.

4. 평화박물관
...교수께서는 4.3 관련 단체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평화박물관 전시물의 내용들을 꼼꼼히 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전시물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인들이 역사 왜곡하는 것과 같이
다소 왜곡된 전시물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로잡을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아니면 알고도 묵인하시는 것입니까?

도내에 잘못 복원된 유적지는 연북정이나 가 지역에 연대들을 비롯해
너무너무 많습니다, 교수님과 직접적인 관련이 아닌 일인지 모르겠으나
어쭙지 않게 드린 말씀 혹 관련자들을 만나면 언질해 주시기 바랍니다.

워낙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표현이 거칠었습니다.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를 청하며
간략하게 드린 말씀 깊이 새겨 바로잡아 주시기를
도민의 한 사람으로 당부드립니다.
송구스럽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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