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알뜨르 비행장에 하올하올 나비 날다
입력 : 2010. 10. 28(목) 00:00
제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그리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장미는 이런 말들로 완성되는 것 같다. 바람, 나비, 비새(悲鳥) 등등. 알뜨르 '름코지(바람곶)'에 매다 치는 '바람'은 매웠다. 나비가 있었네.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벗고 사랑하는 누이 손목잡고 하올하올 저승 상마을로 날아가는 '나비'가.

심방이 굿을 하여 전쟁에 죽은 영혼들을 달래주고, '비새' 같이 울어서 한을 풀어주는 '한풀이'와 같은 말들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0년 10월23일 오후,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그 날 알뜨르 비행장 67만평의 광활한 들판에는 바람이 매웠다. 그리고 거기 남아있는 격납고 19개중 11개에는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중앙의 주차장에는 일본군 전투기 실물 크기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전시물의 동선을 따라 나비 리본을 붙여 저승을 안내하는 '나비' 하올하올 나는 듯하였고, 여기에서 심방 굿을 시작으로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황량한 벌판에서 굿을 시작하니 모든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박경훈의 경술국치 100년을 기념한다는 새롭고 야릇한 개인전에는 그런 의미가 녹아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아픈 굴욕의 역사를 제주바람에 매다 치는 듯한 격렬함과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통속적인 말로도 설명이 가능한 '쓰레기통에 핀 장미'와 같은 버릴 것과 얻을 것이 많은 전시였다. 새로 만든 굴욕의 깃발도, 장식과 문양도, 고철을 펴 제작한 실물 크기의 일본군 제로센 전투기와 비행기에 땜질해 붙인 친일파 명단 등 의미와 무의미의 조합이 대형 예술작품을 위해 바람 속에 흐르고 있었다. 결국 골을 띵하게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치욕의 100년 동안 쌓인 비료포대나 폐비닐 등 쓰레기를 전쟁 폐품 비행기 격납고에서 치워내고 새로운 아시아 평화 100년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말 한 몸 내던져 얻은 자유와 같은 역사화 한 폭이 그려지고 있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마감하기 위해 그린 거창한 그림은 68만평의 알뜨르 평원을 하나의 화폭으로 가정하여 설치한 박경훈의 설치미술이었다. 아시아 평화의 100년을 열기위해 설치한 한 화가의 새 미술작업, 제주의 중견화가 40대 후반의 '62년 범띠' 박경훈은 그렇게 2010년 10월23일 드디어 경술국치 100년 기념 개인전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를 열었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이런 얘기를 전하고 있다. 그의 전시. 시작은 했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알뜨르 들판을 내리꽂는 바람 때문에 철골 구조물이 날아가 다시 계속 보수작업을 하면서 11월14일 전시회를 마감하는 날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완성의 전시를 위하여 그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 8월15일에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도 갔다 왔다.

그는 일본 극우 세력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전시를 계획했었다. 전시하는 동안 바람은 점점 거세어졌고, 쓸쓸한 전시, 황량한 전시는 점점 의미를 보태어 굴욕의 역사 위에 평화의 철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멀리서 계속 올렛꾼들이 옛길을 묻는다. 묵묵히 걸어가는 올렛꾼들의 행렬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보이는 길에서 줍거나 훔친 낭만도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의 전시와 뒤섞여 쉽게 얻을 수 없는 역사, 운명 같은 비극을 완성하고 있었다.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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