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소리없이 나빌레라] 모험으로부터
입력 : 2026. 06. 29(월) 02:00
진명현 hl@ihalla.com
영화 '소리없이 나빌레라'.
[한라일보] 아름다움의 높은 경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숙련된 기술을 이르는 '예술'이라는 말은 우리의 범상한 일상에 뜬 구름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손에 닿지는 않는, 잡을 수는 없는 거리감으로 느껴진다. 놀랍게도 수많은 창작 활동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일상 안에 멀리 있다고만 느꼈던 예술을 들여놓으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예술의 경지를 이미 획득한 자연과는 다르게 인간은 존재의 변화로써 예술의 경지에 근접한다. 세상의 작은 조각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흡수한 뒤 꺼내 놓는다. 온전히 자기의 것이 된 그 조각들의 합은 그렇게 예술의 형상을 갖는다.

청각 장애인 무용수 고아라가 겪는 삶의 변화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없이 나빌레라'는 존재의 변화가 어떻게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지를 담아낸 영화다. 어린 시절 청력을 잃었고 그래서 말 대신 몸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던 한 사람이 있다. 10대 시절, 음악 시간에 남들과는 다른 목소리로 인해 놀림을 받은 뒤 그는 입을 닫는다. 입을 닫았다고 해서 그가 소통을 멈춘 것은 아니다. 말 대신 몸의 언어로 무용수 고아라는 세상과 마주한다. 성인이 된 그는 평창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일 정도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된다. 소리의 한계를 넘어선 꾸준한 도전이 만들어 낸 순간들이 그의 삶 안에 분명한 파동으로 존재한다. 아이 태오가 태어난 뒤 고아라는 20년 만에 다시 입을 연다. 아이를 위한 자장가로부터 멈춰 있던 그의 소리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현진식 감독은 고아라라는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며 한 인간이자 예술가인 고아라의 변화를 담아낸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소리와 다시금 마주한 고아라가 작곡가 이원우를 만나 예술가로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모색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세상의 소리들이 다시금 그를 향해 출렁인다.

고아라는 아이 앞에서 소리 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노래 부르는 것 또한 멈추지 않는다. '소리없이 나빌레라'에는 공감각적인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여럿 있는데 엄마 고아라와 아이 태오가 일상의 사물들이 내는 소리에 함께 다가서며 둘만의 교감과 소통을 그려내는 장면들이 특히 그렇다.

영화의 시작에서 고아라는 절제된 동작으로 부드러운 춤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려내는 움직임들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고아라는 자신의 주파수에 맞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지금까지 그녀의 춤과는 다른 방식이다. 한결 거칠고 격렬하며 드라마틱하다. 무대 위에 혼자였던 그녀가 이제 자신만의 음악과 함께 춤을 추게 된 것이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소리들을 밀어내듯이, 나뭇잎이 바람을 끌어안듯이 몸과 음악이 그렇게 뒤엉켜 하나가 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76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