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AI가 잠식하는 사유의 영역
입력 : 2026. 05. 06(수) 03:00
권주희 hl@ihalla.com
[한라일보] 요즘 지인들 사이의 화두는 AI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다. 무슨 결정이든 ChatGPT에게 먼저 묻게 되는 상황들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웃어넘기기엔 불편한 무언가가 남는다.

필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거나 공모의 심의를 담당할 때, 청년 세대의 에세이, 지원서를 자주 접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야만 하는 글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수려한 어휘와 비슷한 문장 구조, 어딘가 모르게 전문가의 손이 닿은 듯하면서도 억지로 분량을 늘어뜨린 글들을 빈번하게 마주한다.

AI는 분명 유용하다. 복잡한 정보를 순식간에 정리해주고, 막막한 시작의 두려움을 덜어준다. 하지만 편리함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의존이 될 때 우리는 무언가를 잃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도움'의 수준을 넘어 '의존'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창작, 기획, 글쓰기, 심지어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AI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몇 가지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사고력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단순한 정보 처리가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감정이 뒤섞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다. AI가 대신 결론을 내려줄수록 우리는 사유의 과정을 생략한다. 처음엔 편하지만,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이 약해진다. 학생들이 에세이를 AI로 작성하고, 직장인들이 기획안을 AI에게 맡기는 사이 개인의 '관점'은 조용히 증발한다. AI는 정제된 문장과 구조를 즉각적으로 제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탐색하는 시간을 생략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구성하는 능력 자체를 점차 외부화하는 일이다. 결국 생각은 '생성'이 아니라 '선택'의 행위로 축소된다.

둘째, 창작의 균질화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균값에 가까운 결과를 산출한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차이, 낯선 감각, 실패에서 비롯되는 창작의 고유성을 희석한다. 특히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치명적이다. 작품이 더 이상 작가의 경험과 감각에서 출발하지 않고, 데이터의 통계적 결과에 수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책임의 불분명성이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기반으로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용자는 편리함을 취하지만 오류나 편향이 발생했을 때 이를 감당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 결국 책임은 흐려지고, 판단은 점점 더 외주화된다.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도구가 사고를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효율을 얻는 대신 사유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의 방식이다. 질문을 AI에게 맡기지 않고, 답을 검증하는 과정에 스스로 개입하는 것. 그 최소한의 긴장이 유지될 때, AI는 비로소 도구로 남을 수 있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99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오피니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