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애의 한라칼럼] 만추가 비추는 심리 - 아들러가 말한 성숙의 조건
입력 : 2025. 11. 18(화) 01:00수정 : 2025. 11. 18(화) 08:48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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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아침 공기가 날카로워지면서 가을이 이미 깊숙이 다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아들러 심리학에 오래 몰입하다 보니 자연의 변화를 바라볼 때도 인간의 마음과 삶의 순환이 겹쳐 보이곤 한다. 계절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내면 발달과 닮아 있는 장면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작은 기쁨이 됐다. 가을의 나무는 화려함을 거두고 남은 잎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이 풍경은 쓸쓸함을 넘어 한 권의 철학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고요한 장면은 아들러 심리학이 말하는 인간의 성장 과정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아들러는 인간을 고립된 개체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둘러싼 관계와 환경을 포함해 이해해야 한다며 이를 전체론(holism)이라 불렀다.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뿌리를 감싼 흙, 햇살, 바람까지 함께 보아야 하듯 인간 역시 관계의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의 풍경은 이 통합적 시각을 가장 고요하게 보여준다.
가을 나뭇잎의 갈색 빛은 아들러의 핵심 개념인 열등감과 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열등감을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기점으로 보았다. 나무가 잎을 떨구는 일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인간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비워낼 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난다. 아들러가 말한 보상(Uberwindung)은 바로 이 내적 성장의 힘이다. 자연은 이 보상의 구조를 계절의 리듬 속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무실 앞에서 한여름 푸른빛을 머금고 피어났던 수국은 가을 앞에서 색을 잃고 마른 봉오리만 남았다. 이 위에 머지않아 내려앉을 첫눈은 떠남을 받아들이면서도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마음을 닮았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다음 생을 품기 위한 전환이다. 마른 꽃잎조차 미래를 향한 조용한 의지를 품고 있듯, 인간의 행동도 의식·무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아들러는 이를 인간 이해의 핵심인 목적론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아들러 이론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이 있다. 그는 진정한 심리적 건강이 타인과의 연결감,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관심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깊은 인식이다. 만추의 자연은 이 철학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다. 나무의 열매는 혼자의 결과가 아니다. 비와 햇살, 바람, 벌과 새가 함께 만든 결실이며, 그 열매는 다시 공동체의 먹이가 되고 씨앗이 된다. 자연은 철저히 '함께 살아감'의 질서 속에 있다.
결국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작은 민감성, 따뜻한 연결의 경험이 고립된 마음을 다시 세운다. 깊어가는 계절이 내려놓음 속의 갱신을 알려주듯, 우리 또한 사회적 관심을 회복할 때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이가 깊어질수록 가을이 주는 메시지가 선명하고 강렬하다. 성숙은 결국 '함께'에서 완성된다고. <우정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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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뭇잎의 갈색 빛은 아들러의 핵심 개념인 열등감과 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열등감을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기점으로 보았다. 나무가 잎을 떨구는 일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인간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비워낼 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난다. 아들러가 말한 보상(Uberwindung)은 바로 이 내적 성장의 힘이다. 자연은 이 보상의 구조를 계절의 리듬 속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무실 앞에서 한여름 푸른빛을 머금고 피어났던 수국은 가을 앞에서 색을 잃고 마른 봉오리만 남았다. 이 위에 머지않아 내려앉을 첫눈은 떠남을 받아들이면서도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마음을 닮았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다음 생을 품기 위한 전환이다. 마른 꽃잎조차 미래를 향한 조용한 의지를 품고 있듯, 인간의 행동도 의식·무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아들러는 이를 인간 이해의 핵심인 목적론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아들러 이론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이 있다. 그는 진정한 심리적 건강이 타인과의 연결감,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관심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깊은 인식이다. 만추의 자연은 이 철학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낸다. 나무의 열매는 혼자의 결과가 아니다. 비와 햇살, 바람, 벌과 새가 함께 만든 결실이며, 그 열매는 다시 공동체의 먹이가 되고 씨앗이 된다. 자연은 철저히 '함께 살아감'의 질서 속에 있다.
결국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타인을 향한 작은 민감성, 따뜻한 연결의 경험이 고립된 마음을 다시 세운다. 깊어가는 계절이 내려놓음 속의 갱신을 알려주듯, 우리 또한 사회적 관심을 회복할 때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이가 깊어질수록 가을이 주는 메시지가 선명하고 강렬하다. 성숙은 결국 '함께'에서 완성된다고. <우정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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