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때의 우리
입력 : 2024. 05. 17(금) 00:00수정 : 2024. 05. 17(금) 15:59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영화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
[한라일보] 미래를 꿈 꾸는 초입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향치 일 수 밖에 없다. 마음은 이미 저 앞까지 달려 나가고 있는데 그 속도에 익숙하지 않은 몸은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고 있는 듯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골대를 위해 수도 없이 던져 넣었던 질문들과 도전들이 튕겨 나갈 때마다, 왕도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 앞에 주눅들 때마다 마음을 채워 주었던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성과를 이룬 롤 모델도 아니고 능숙한 기술을 가진 코치도 아닌, 엇비슷한 기량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는 취향을 가진 동료들이 그들이다. 대개는 허허실실하고 가끔은 서로에게만 반짝이며 인생에서 아주 드물게 나를 울리다 웃기고 웃기다 울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동료인 동시에 친구라고 호명한다.

영화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은 이 귀한 지위를 서로에게 허락한 이들이 보낸 찬란한 전성기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각자 다른 아티스트들이 가진 고유의 개성이 충돌해서 벌어진 빅뱅. 그리고 그 빅뱅이 불러온 근사한 시대의 소음과 예기치 못한 파열음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힙노시스'는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등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들의 얼굴인 LP커버를 디자인한 스튜디오의 이름이다. 오브리 포웰과 스톰 소거슨 이라는 두 친구가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궁극의 결과물들은 예술의 영역인 동시에 산업과 맞닿아 있는 LP커버라는 형식으로 뮤지션들은 물론 대중들의 눈과 마음을 모두 사로 잡있다. 무려 650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유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검은 바탕 위에 삼각형 모양의 프리즘 이미지를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그들의 대표작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한 아트 프레임이다.

아직 컴퓨터 그래픽의 신묘한 능력이 발휘되기 이전인 70년대, 힙노시스가 거쳐온 길들은 울퉁불퉁한 개성으로 가득하다.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아이디어의 텃밭에 그들이 뿌리는 일상의 씨앗들은 수고스럽기 그지없고 거기에서 피어나 마침내 만개한 수확물들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번쩍하고 머리 속을 스치고 간 아이디어를 발아시키기 위해 축구공의 바람을 뺀 채 비행기에 싣고 사막으로 날아가 촬영을 진행하고 그렇게 얻은 사진 위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색채를 더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예술이란 과연 노력 위에 피는 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하지만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전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오브리와 스톰, 두 사람의 일치와 불일치의 순간들이다. 철 없던 젊은 시절의 의기투합이 긴 세월을 거쳐 팀 플레이로 완성되기까지 수 없이 서로에게 부딪히고 그렇게 접촉면을 더 넓혀가고 끝내는 나에게 너의 자리를 내어주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다툼에서 발생한 소리들 또한 음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협화음도 화음처럼 느끼게 만드는 두 사람의 듀엣 송은 그렇게 뭉클한 구석이 있다.

힙노시스라는 걸출한 스튜디오가 창립한 지 50여년이 지나서 이들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오브리 포웰이 덕이 크다. 그가 2013년 세상을 떠난 동료이자 친구인 스톰 소거슨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가 아닐 리 없는 이 추억 모음집은 나와 너로 가득 차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어쩌면 불 같았던 사랑 보다 더 오래 마음을 데워주는 일의 기쁨과 슬픔, 환희화 고통으로 가득한 추억이 둘 사이에 존재하고 단 한 사람이었을 스톰은 떠났지만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정수가 여전히 생생하게, 이제는 전설로 호명되고 있다는 것. 영화 속에서 여러 번 스톰의 이름을 부르는 오브피 파월의 깊어진 주름들 사이에서 문득 보이는 미소들은 그렇게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모든 음악이, 예술이, 우정이 모두 그러하듯 단지 그것 만으로도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만나면 우리는 마침내 방향키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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