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79] 3부 오름-(38)다래오름은 돌오름과 같은 기원, 물이 있는 오름
입력 : 2024. 04. 30(화) 00: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박수기정, 위가 평평하고 깎아지른 벼랑
다래오름, 다래도 없고 달 같지도 않아

[한라일보] 다래오름이 여럿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1148번지의 월라봉도 그중 하나다. 표고 200.7m, 자체높이 101m이다. 지역에서는 흔히 도레오름, 돌레오름이라고 부른다.

1709년에 편찬한 탐라지도를 비롯한 서책과 지도에는 월라악(月羅岳), 월내악(月乃岳), 월라악(月?岳), 월라산(月羅山)으로 기록했다. 최근 지도에는 월라봉(月羅峰)으로 표기했다. 이 이름들은 현지 발음 그대로 부르는 도레오름과 이를 한자 차용한 월라악으로 나눌 수 있다. 발음을 고려하면 월라악(月羅岳), 월내악(月乃岳) 등은 도레오름(다래오름)을 어떻게든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도레'라는 말이 '달'(月)에서 온 것인지, 열매(다래)에서 온 것인지 특정할 수 있어야 이 한자 말도 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과연 어떤 뜻으로 썼을까? 달(月)에서 온 것이라면 훈독자, 도레(열매)에서 온 것이라면 훈가자 차용방식이다.

박수기정은 위가 평평한 깎아지른 벼랑이라는 뜻이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제공
세간에 이 뜻을 열매 다래라고 보아 다래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또 한편에서는 달이 떠오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높다는 뜻의 고구려어 달(達)에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나 같이 글자에서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다래나무가 많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실증 불가능할뿐더러 마땅한 방증도 없다. 떠오르는 달(月)과 같다는 말도 이상하다. 떠오르는 달, 떠 있는 달, 지는 달의 모양이 어떻게 다르며 이 오름과 어떤 관계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다. 달은 뜨고 지는 때보다 날짜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고구려어 높다는 뜻의 달(達)에서 온 것이라는 설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웃하여 더 높은 굴메오름이 있는데 이 오름을 높게 봤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강물이 흐르듯 연중 흐르는 물, 다래오름의 특성

도레오름의 속성 중 두드러진 특징은 뭐니 뭐니해도 사시사철 풍부하게 흘러내리는 창고천이 휘감아 돈다는 점이다. 안덕계곡이라고도 한다. 이 계곡은 마치 강물이 흐르듯 연중 흐른다. 물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다. 물은 돌(돌)이다. 토산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감낭오름, 원물오름, 도두봉에서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도레오름 혹은 다래오름은 '돌오름'이다. '돌'을 개음절로 발음하면 '도래'가 된다. 개음절이란 언어학 용어의 하나다. 하나의 음절에 자음은 여러 개가 들어갈 수 있으나 모음의 경우는 딱 한 번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음절을 나눌 때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는 모음이다. 모음 하나에 전후 자음 몇 개가 포함되어 1음절을 이루게 된다. 이중 음절의 끝이 모음이면 개음절, 자음이면 폐음절이라고 한다. '썸씽'을 '사무싱구', '하십니까'를 '하시무니까'라고 하면 개음절이다. 사실 국어도 한자어를 제외하면 개음절이 훨씬 많다. 일본어는 거의 전부 개음절이다. 고구려어도 개음절이 훨씬 우세했다고 한다. 우리말과 친족어 중 하나인 퉁구스어에서는 폐음절을 아예 발음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돌오름'과 '다래오름'은 같은 말이다. 다래오름이란 물이 흐르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다래오름을 사시사철 강처럼 휘감아 흐르는 안덕계곡. 김찬수
이 오름의 두 번째 두드러진 속성은 절벽에 있다. 이 절벽을 박수기정 혹은 박수그정이라고 한다.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박수'는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물이고, '기정' 혹은 '그정'은 절벽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이곳에 박수 또는 박소라는 곳이 있다. 절벽 아래 지상 1m 암벽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 이 물을 바가지로 받아 마신다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첫째 의문점은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물이란 어떤 물을 말하는가, 그리고 그런 물을 '박수'라고 표현하는 사례가 있는가이다. 제주어사전에 따르면 바가지는 '박세기'라고 한다. 같은 뜻으로 박이라는 단어도 없고, 바가지라는 단어도 없다. 박수라는 단어도 없다. 그러니 이 설명은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의문점은 절벽을 제주어로 그정 혹은 기정이라고 한다. 왜 육지에는 없는 이 말이 제주말엔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박수'와 '그정', 모두 벼랑을 의미, 아이누어에서 기원

우선 절벽을 '기정' 혹은 '그정'이라고 하는 제주어는 벼랑을 의미하는 아이누어 '그테'에서 기원한 말이다. 이 말은 점차 구개음화과정을 거쳐 '그제'로 되고 이게 변하여 '그정' 혹은 '기정'으로 굳어졌다. 일본어에는 '뒤집다'라는 뜻의 '구츠가에(くつがえ)'라는 말에 잔영이 남아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박수'라는 말도 국어에 없는 말이다. 제주어에도 이 지명 외에는 사용하는 예가 없다. 이 말도 '벼랑'이라는 아이누어 '벳' 혹은 '베스'에서 기원한 말이다. 이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개음절화하고, 언어습관과 연상작용을 거쳐 오늘날의 '박수'로 정착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누어는 같은 단어가 여러 뜻을 갖는 특성이 두드러진 언어다. 다의어라고도 한다. 이 '벳'이라는 말도 벼랑을 단적으로 지시하기도 하지만, 위가 평평한 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박수기정이라는 지명은 위가 평평한 깎아지른 벼랑이라는 뜻이다.

지명이란 오랜 기간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분명한 근거 없이 설명하다간 이같이 엉뚱해지기 쉽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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