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대천동 도순마을
냇가 따라 한라산 정기가 늘 흘러오는 마을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8. 12(금) 00:00
영실기암까지 냇가를 따라 올라갈 수 있는 마을이다. 동서로 1㎞지만 남북으로는 15㎞가 넘는다. 한라산 정기가 냇가를 따라 흘러와 풍부한 식생을 형성시켰다. 정주공간과 인접한 도순천 양옆에 온대성 수목이라고 할 수 있는 녹나무 외에도 구실잣밤나무, 산유자나무, 상산나무 등 식생의 보고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가 하천을 따라 올라가며 느낀 점은 간명하다. 도순천 자체가 거대한 식물원이라는 것. 그 중에서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은 천연기념물 제162호 녹나무 자생지다. 제주특별자치도 도목이기도 한 녹나무에 대해 마을 어르신들은 그 가치를 이렇게 표현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사는 것이 녹나무의 신비라는 것이다. 4·3 이전까지만 해도 하천변에 몇 아름 되는 크기의 녹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녹나무는 그 당시 강제로 잘라버린 녹나무들에 비하면 묘목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원시림 지역이었다는 뜻. 원나라가 탐라를 고려에서 분리해 직접 탐라총관부를 설치, 지배하던 시기에 녹나무를 가져갔다는 기록이 그런 크기의 나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견고하며 좀이 슬지 않는 특성에다 다양한 약리작용까지 있다고 하니 원 제국이 탐 낼만도 했을 것이다. 도순목장 위쪽 쌍계암에 모셔진 녹나무 불상은 나뭇결을 그대로 살렸는데 결의 흐름이 주는 신비감에 저절로 경탄이 일어난다. 세월이 흘러도 쪼개짐이 없으니 목불을 조성하는데 쓰일 수 있었다는 녹나무의 진가를 발견한다,

고작 명의 제후국 조선이 건국되고 태종16년 이 섬에 3현이 설치되면서 대정현에 속한 석송리라는 마을. 이미 마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없는 마을에 이름을 붙일 일은 없었을 터. 족보와 같은 자료에 근거하면 1402년 경 이씨, 서씨 등에 의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돼있다. 지금의 도순리는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마을 명칭이라고 한다. 인근 마을 어르신들이 '돌생이'라는 이름으로 도순리를 부르는 것에 대한 연원을 파악했더니 1896년 군제가 실시되던 당시에 돌송리(일명 독송리)라고 불렀던 과거가 있어, 거기에서 왔다는 것이다.

도순마을이 보유한 엄청난 경관 자원은 마을목장이다. 옆에 풍부한 자연림 하천이 목장과 함께 있어서 하나의 벨트로 연결 지어진다면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뷰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전망 공간이 수두룩하다. 목장 내에 옛 목축문화를 가늠 할 수 있는 곳들도 있어서 이색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해발고도를 따라 느껴지는 요소들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놀라운 방법들이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 경관 자원으로써 큰 가치를 지닌 녹차밭 풍경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시각적 힐링을 주는 매력이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두 개의 초록이 대표단수가 된 느낌이다. 도순리에서 만난 녹차와 녹나무. 사시사철 초록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다. 정주공간과 한라산 사이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마을 자산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도순마을의 앞날은 밝다.

이상준 마을 회장에게 도순마을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공감대가 무엇인지 여쭸다. 대답은 명료하게 '한울타리'라고 했다.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사실이 있다. 제주 최초의 새마을금고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이러한 전통적 공동체의식에서 왔다는 그 것. 한 울타리 안에 산다는 것은 가족을 의미한다. 가족은 천륜이라서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숙명. 하염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이뤄진 그런 관계를 마을 주민들의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마을주민들이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해 금융을 운영한다는 것이 새마을운동 초창기 보편적 의식 수준으로써는 도전하기 힘든 과제였을 것이다. 도순리는 해냈다. 마을 주민 그 누구도 나에게 손해를 끼칠 사람이 없다는 확신. 이 것이 한 울타리에 담긴 진정한 뜻이라고 밝혔다. 도순마을의 힘은 그러한 신뢰에서 나온다. 마을발전의 무한 동력으로 결코 모자람이 없다. 도순마을이 보유한 방대한 자원들의 가치보다 더 큰 자산이 있다면 당당하게 한울타리정신이라고 눈빛으로 이야기 하는 듯하다. 다양한 가능성이 기다리는 마을. 끊임없이 분투하고 활로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더욱 새롭고 활기찰 것이다. <시각예술가>

마을 안길 정겨운 풍경
<수채화 79cm×35cm>

옛 취락구조 간직한 소박한 길을 걷다가 만난 붉은색 칠한 문. 대문은 아닌 듯 하고 경운기나 트렉터를 위한 건물로 보인다. 함석으로 박공을 만들어서 오묘하게 휘어지고 살짝 찢어진 모습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꾸밈없는 품성을 짐작케 해 즐겁다. 앞에 잠금장치로 보이는 뜸돌 정도의 매끈한 돌이 주변에 돌담들과 대비되어 정겹다.

한 세대 이상을 그 자리에서 자란 전봇대보다 큰 삼나무가 발생시키는 그늘은 실로 놀라운 빛과 그늘의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밑동 굵기가 전봇대와 대충 같아 보인다.

세대와 세대가 공존하는 지금의 현실을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화면에 담을 수 있기에 그렸다. 골목이라기엔 크고, 대로변이라고 할 수는 없는 지극히 제주적인 마을길이다. 굽이 돌아가는 공간적 상황이 지붕들의 다양한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멀리 남쪽 바닷가에 형성된 두꺼운 흰 구름이 잔뜩 물기를 머금어 여기로 달려오면 시원한 소나기를 선물할 것 같다. 지붕의 색들이 나름대로 멋을 부리며 조화를 이루는 안온한 싱그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높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동질감이며 연대의식이다.

모두가 초가지붕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 여름날을 그리는 심정은 더 큰 기쁨이라 해야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라 하거니와 마을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웃해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며 이 햇살처럼 눈부신 환희라는 것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풍경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다.



도순천 큰냇도의 환희
<수채화 79cm×35cm>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냇가를 그린다는 것은 설레면서도 큰 부담이다. 도순리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그 명성에 누가되지 않을까 해 그렇다. 특히 여름날 오후에 강렬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화면으로 맞이하는 작업은 신중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 하천의 바닥은 모두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고 양 옆은 숲이 우거진 상황에 오묘한 각도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너무 강한 나머지 반사돼 다시 하나의 광원이 된다. 냇가 바위들의 명암이 나무와 정 반대로 바뀌는 경우가 발생되는 것이다. 하천의 중앙 부분은 하늘에서 들어오는 빛이 조금 더 강하고. 한 화면에 명암이 최소 세 개가 등장하는 경이로움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바위들의 거리감에서 발생하는 농도차이는 이 곳이 현실 세계임을 보여준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반사된 빛이 다시 새로운 빛의 세상을 구가하는 여기. 돌과 나무와 물이라는 물상이 빛에 의해 독특한 자연공간으로 재구성 된다. 그려낸다는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들판에 서 있는 나무와 여기 하천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나무가 광선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함이라고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리다보면 알게 되는 어떤 강렬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며칠 전 폭우로 내가 터지고 나니 아직도 작은 물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리는 냇물. 내가 터쳤을 때의 사나움이 아니라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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