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⑤선덕사 입구~선돌~숲길~한라산 둘레길~백록계곡~선돌~숲길~선덕사 입구
마음의 여유를 찾아 떠난 제주의 숲… “가을이었다”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입력 : 2021. 10. 05(화) 00:00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백록계곡의 모습. 평소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길이 흘러 신비한 푸른빛을 만날 수 있다. 이상국기자
제주 숲, 가을 옷 갈아입을 채비
수직으로 선 ‘선돌’ 웅장함 압권
거대한 야생 표고버섯 만나 행운
“주위 둘러보며 천천히 오르는 길”

9월 끝자락의 숲엔 아직도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다.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한여름같이 기세 등등하다. 몇 분 걷지도 않았는데 등허리가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가을 숲을 기대했는데 아직도 여름이라니 맥이 풀린다.

그런데 같이 탐방에 나선 이가 "아이고 어느새 '나도샤프란'이 피었네"하며 숲에 찾아온 가을 소식을 알려준다. 쳇바퀴 같은 오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어제와 달랐듯이 숲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 나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제주의 숲은 가을 옷을 갈아입을 채비가 한창이다. 단 밀린 숙제를 해치울 것처럼 조급함이 앞서면 그 변화를 알아챌 수 없다. 숲을 걷는 사람에겐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지난 9월 25일 한라일보의 '2021년 제5차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가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입구에서 시작해 선돌, 숲길, 한라산 둘레길, 백록계곡을 지나 다시 선돌, 숲길과 선덕사로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됐다. 지난해부터 에코투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참여한 채 진행되고 있다.

투어가 시작된 선덕사 입구엔 조선시대 시인이자 문신인 임재(1549~1587년)가 이 사찰에 머물며 지은 시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신선을 벗하며 영지를 캐어 돌아오는 길, 영천의 노을 비낀 자리에 석문이 열리면 저녁 예불 종소리 끊어진 적막한 산사뿐, 시냇가에 흐르는 달빛만 홀로 나를 비추네.' 지금이야 밤길 산행은 엄두도 못 내지만 옛 선조들은 이렇게 밤에 산을 걸으며 풍류까지 읊었다.

나도샤프란(사진 왼쪽), 연꽃
선덕사 입구에서 길게 이어진 길을 1분 남짓 따라가다 보면 선돌교가 나오고 이 선돌교를 건너 5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선덕사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문헌에 따르면 선덕사는 1982년 중창(다시 지어진 것)됐으며 선덕사 내 대적광전은 도내 사찰 법당 중 유일하게 중층 목조로 축조돼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덕사는 문화재청이 2017년 선정한 전통산사문화재 25선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선덕사를 지나 '선돌'까지 가려면 30분가량 줄곧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숨이 턱 막힐 때쯤 길잡이로 나선 박태석 씨가 "급하게 오르려 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면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라고 다독였다. 그제야 발 밑에 입 벌린 밤송이가 우수수 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얼른 밤 하나를 주워 가방에 담았다.

선돌
눈앞에 펼쳐진 선돌은 웅장함 그 자체다. 수직으로 서 있는 커다란 바위에 일행 모두 감탄사를 쏟아냈다. 선돌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만 있다. 선돌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감히 오르지 못하고 우러러만 볼 수 있는 선돌 아래엔 평상과 누군가 떠놓은 정화수가 있다. 박 씨가 일행 중 가장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다.

소원을 빌고 다시 선덕사 쪽으로 내려와 한라산 둘레길 중 하나인 수악길로 향했다. 한라산 둘레길은 각 코스별로 출발하는 곳과 나오는 종점이 다른데 그 거리도 최소 5~10㎞ 이상 떨어져 있다고 한다.

또다시 오르막이지만 둘레길을 빼곡히 채운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가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30분쯤 걸었을까 일행 중 누군가 심마니처럼 소리를 크게 외쳤다. 야생 표고버섯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큰 표고버섯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구김새 없이 이렇게 우산을 쫙 핀 야생 표고버섯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면서 오늘은 운이 좋다고 했다.

야생 표고버섯
무엽란(사진 왼쪽), 고동색광대버섯
제주무엽란도 만날 수 있었다. 바닥에서 10㎝ 높이로 길게 솟은 무엽난은 온통 검은색이고 잎도 잘 분간할 수 없어 자칫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산악회 수십년 경력의 길잡이 박씨가 있어 처음으로 '인지'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제주무엽란은 균뿌리식물로 뿌리에 공생하고 있는 곰팡이나 박테리아 등에 의해 유기물을 분해해 양분을 얻기 때문에 광합성이 필요하지 않아 잎이 없다고 한다. 이름이 왜 무엽란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둘레길을 걸으며 효명사 방향으로 걷다 보면 눈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백록계곡이 보인다. 평소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길이 흘러 푸른빛의 신비감이 감돈다고 한다.

투어 마지막은 '천국의 문'이 장식했다. 백록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효명사가 나오는 데 이 법당 옆길 계단 아래에 푸른 이끼가 덮인 아치형 문인 '천국의 문'이 있다. 이국적인 풍광에 핫플레이스로 소문나 발길이 잦다고 한다. '천국의 문'에 이미 한 커플이 도착해 사진을 찍고 있다.

제5차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7시간가량이 소요됐다. 코로나19로 많은 탐방객과 함께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길잡이로 나선 박태석 씨는 "얼른 코로나19가 끝나 이 숲길을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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