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혼자 남아 슬피우는 여린 존재들을 위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0. 05. 15(금) 00:00
환경운동가·사회 활동가
아동문학 넘은 생애 조명

얼마 전 '구름빵' 작가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상에 등장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자다.

스웨덴 태생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동화작가인 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책이 있다. 덴마크의 전기 작가 옌스 안데르센이 쓴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다. 린드그렌의 작가적 면모에 집중하면서도 그가 중요하게 여긴 모든 것들에 초점을 맞춘 전기다. '세계적 작가'라는 평면적 이미지를 넘어 린드그렌의 빛과 그림자를 입체적으로 살피면서 한 인간이 일생 동안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크기와 성취의 범위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린이도 예술을 통해 충격을 경험해야 한다"며 아동문학의 금기를 과감히 깨트렸던 린드그렌의 일대기는 문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웨덴 반핵 운동과 동물복지법 논쟁을 촉발시킨 환경운동가였고 아동 포르노그래피, 청년 주택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낸 활동가였다. 여성들이 격변의 20세기에 기존의 전통적 삶의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꿈을 쫒기 시작할 때 린드그렌은 보다 더 영민한 감각으로 시대의 진보를 읽으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그의 씩씩하고 거침없어 보이는 행보 이면에는 어린 날 겪었던 고통이 자리잡고 있다. 린드그렌은 피임기구 광고마저 법으로 금지되었던 1920년대 스웨덴 농촌에서 혼외자를 임신한 여성으로 낙인 찍혔고 자신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폭력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험난한 여정에 힘이 되어 준 것은 유능하고 사려깊은 여성들이었다. 여성들과의 연대에 힘입어 성장한 린드그렌은 다른 약자들의 조력자이자 대변자로 살아간다.

부당함과 맞서 싸워야 할 때, 기꺼이 마음을 보태며 아픔을 나눌 각오가 되어 있는 린드그렌의 가치관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1970년대 혁명의 정신을 반영한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도 그중 하나다.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이유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코르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누구도 혼자 남아 슬피 울면서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어."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작고 소외된 존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린드그렌의 생애를 함축하고 있다. 김경희 옮김. 창비.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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