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4] 3부 오름-(133)돔박이오름과 돔배오름
입력 : 2026. 06. 09(화) 03:00수정 : 2026. 06. 09(화) 12:22
김찬수 hl@ihalla.com
수백수천 년 된 지명을 오늘날의 언어로 풀려고 하다니
그저 유사한 말에 대입하려고만 해


동백을 닮았다는 오름이 있다. 어떤 모양이기에 동백을 닮았다는 것인가? 이 오름이 동백 열매를 닮았다는 것인가?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 돔박이오름이다. 표고 521.4m, 자체높이 51m로 낮고 둥그런 지형이 두드러진다.

남쪽에서 바라본 돔박이오름. 왼쪽이 돔박이오름이다. 김찬수
이 오름 지명은 1899년에 나온 제주군읍지에 동백악(冬栢岳)이라고 나오는 것이 시초일 것이다. 지역에서는 동백악(童泊岳), 동박이악(同博伊岳), 동백이악(桐白伊岳), 돔백이 등으로 불리거나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명에 대해 '동백(冬柏)'은 음은 동백이지만, 제주어 '돔박', '동박'에 접사 '이'가 덧붙은 '돔박이'의 음독자로 풀이한 예가 있다. 동백악(童泊岳), 동박이악(同博伊岳, 동백이악(桐白伊岳), 돔백이 등 모두 동백나무의 제주어 '돔박', '동박'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오름의 형태가 동백과 같다면서다.

이런 설명은 1995년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 등장한 이래 1997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서 그대로 받아썼다. 이후에 나온 어느 오름 지명 연구서에는 한자 표기 지명 동백(冬柏)은 제주어 '돔박'의 음독자 표기라고 했다. 동백을 지시하는 제주어를 뜻과 음을 살려 그대로 받아적었다는 취지다. '동백(童泊)', '동박이(同博伊)', '동백(桐白)'이라는 표기도 제주어 '돔박'의 음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이 오름의 형태가 '돔박·동박+이(명사파생접사)'의 구성이다. 이 오름의 형태가 '돔박·동박(동백)'과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결론을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라고 해 그 책임을 다른 데로 슬쩍 떠넘긴 모양새다. 이 지명들은 음독자가 아니라 음가자로 적은 것들이다. 뜻과는 무관하게 발음 그대로 적었다는 뜻이다. 음독자라 하려면 이 오름과 동백과의 관계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돔배오름이 돔배를 닮았다고?


돔배를 닮았다는 오름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표고 466m, 자체높이 36m의 낮은 오름으로 돔배오름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둥근 지형이 두드러진다.

돔배오름. 낮고 둥근 지형이 특징으로, 동쪽에서 바라본 분화구 내 모습이다. 김찬수
1703년 탐라순력도와 탐라지도병서에 '궤악(机岳)'으로 표기한 이래 여러 고전에 '조악(俎岳)', '돔배오름', '정악(丁岳)' 등으로 표기됐다. 1965년 제주도에는 돔배오름, 동지악(東旨岳)으로 표기됐다. 주변 비문에 동배악(東背岳)으로 기록됐다. '돔배'가 제주어로 도마를 가리키는 데, 이 오름의 형상이 도마와 같아서 이런 지명이 붙었다는 설명이 주를 이룬다.

오름 나그네에 따르면 '정악(丁岳)'이라고 하는 표기는 아궁이의 재를 치우거나, 곡식을 널고 모으는 데도 활용되던 제주도 재래 농기구 중 '곰베'라는 것이 있는데, '돔베'를 '곰베'로 인식해서 쓴 표기라고 한다.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 외의 표기로는 '궤악(机岳)', '조악(俎岳)', '돔배오름', '동지악(東旨岳)' 등이 보인다. '궤악(机岳)'의 '궤(机)'는 '도마 궤', 조악(俎岳)의 '조(俎)'는 역시 훈이 도마다. 따라서 '돔배'를 나타내려고 차자한 표기들이다. 훈의 음을 실제 뜻과는 무관하게 빌려온 것이다. 훈가자 차자 방식이라 한다. '동배악(東背岳)'이란 표기는 '돔배오름' 외에 '동베오름'이라고도 불렸거나 돔베오름의 '돔'을 표기하는데 적절한 한자를 찾다가 '동(東)'을 동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별다른 뜻이 없이 음가자 표기에 해당한다. 동쪽이 등을 이루고 마루를 이룬다는 데서 만든 한자어라는 추정은 너무 나간 해독이다.

이 두 오름 즉, 안덕면 광평리의 돔박이오름과 조천읍 교래리 돔베오름은 같은 어원에서 기원한 지명이다. 똑같은 뜻인데 발음만 조금 다른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기록자들이 나름의 해석을 바탕으로 표기하면서 다르게 나타났을 뿐이다.



회전하듯 둥근 오름


회전 상의 둥근 형태 혹은 다소 볼록한 지형을 일컫는 말로 몽골어권에서는 '토무-'를 공통조어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세 몽골어에서는 '투마-'로 나타나지만, 몽골문어에서는 '톰베'라는 발음으로 볼록한 지형을 지시한다. 이런 것이 제주도 고대어에서는 회전하듯 둥글면서 다소 볼록한 정도의 지형을 지시하는 말로 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대응하는 투르크어로는 '톰-'으로 나타난다. 이 말을 투르크어의 일부 방언에서는 '톰박'으로 발음한다.

결국 '돔박이오름'과 '돔배오름'은 같은 뜻으로 회전하듯 둥글며 다소 볼록한 정도의 오름을 지시하는 뜻이다. '돔박이오름'은 몽골어 계통, 돔베오름은 투르크어 계통의 발음에 가깝다. 제주어에서는 이와 같이 지명에 화석화돼 제주어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한편, 일본어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일본어에서 방추를 '츠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돔박이오름의 '돔박', 돔베오름의 '돔베'의 구개음화 현상으로 나타난 발음이다. 같은 기원으로 추정된다. 방추란 가락바퀴의 회전력을 이용하여 섬유를 비틀어 뽑아내어 실로 만드는 도구다.

결론적으로 '돔박이'라는 오름 지명과 '돔베오름' 지명은 몽골어의 공통조상어 '회전하다, 볼록하다'를 의미하는 '토무-'에서 분화했으며, 중세 몽골어 '투마-', 몽골문어 '토무-', '타무-'가 회전하다, '톰베'가 '볼록하다'이다. 투르크어 공통조어 '톰-'이 '둥근', '볼록한' 등의 뜻을 갖는다. 키르기스스탄어 '톰폭', 카자흐어와 노가이어 '톰팍', 카라칼파크어와 쿠미크어 '톰바이-', 일본어 '츠무'와 비교된다.

민간에서나 고전에서는 다양한 차자방식으로 지명을 표기해 왔다. 수백 혹은 수천 년 내려온 지명을 오늘날 발음의 유사성만으로 해독하다간 엉뚱해지기 십상이다. 돔박이오름과 돔베오름은 같은 뜻의 지명으로 회전하듯 둥근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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