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1)성산읍 성산리
입력 : 2023. 01. 06(금) 00:00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감동과 환희의 빛 마을 자체가 지구촌 보물
[한라일보] 흔히 일컬어 우리민족의 역사를 반만년 역사라고 한다. 500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와 함께하는 일출봉. 약 5000년 전에 바다에서 솟아난 수성화산체다. 지질학적 나이로는 너무 어리기에 생동하는 에너지가 아직도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학술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어서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성산리에 가게 되면 상상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섬 제주의 선사유적들의 연대를 보면 5000년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거늘, 만약에 일출봉이 분화하던 시기에 살던 제주인이 바다를 뚫고 솟아나는 거대한 산을 목격했다면 그 경이로움과 신비감이 어떠했을까? 5000년 전이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농경이 시작된 지 500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수 억 년의 시간을 다루는 지질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출봉의 탄생. 생동하는 지구의 에너지를 느끼는 곳이다. 그러한 사실에 기인해 2007년 UNESCO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고, 2010년에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하게 된다. 말과 뜻 그대로 세계인이 인정하는 지구의 보물이다. 단순하게 관광자원으로 바라볼 수 없는 더 큰 가치가 자리 잡고 있는 것. 일출봉을 중심으로 성산리 해안 일대에는 녹조류, 갈조류, 홍조류 등 총 127종의 해안식물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해조상을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산동물의 경우 한국산 미기록 종을 포함해 177종이나 된다. 안타까운 것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생물관람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공동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절실한 일이다. 교육적 가치와 함께 흥미로운 관광자원이기에 체류형 관광지로 가는 첩경이 될 터이기에 그렇다.

성산리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쳐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바다가 나오면 이는 섬이다. 그런데 자연의 경이로움이 있어 바다속 퇴적물들이 밀려와 쌓이면서 일출봉과 연결지어줬으니 섬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수 간만에 의해 고성리로 통하는 마을 입구가 열리고 닫히는 자연 수문이 있었던 곳, 길 하나로 사람들이 왕래하며 마을이 형성되고 발전해나갔다는 사실은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마을임을 보여준다.

2000명이 200만명을 맞이하는 마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1년에 1000명의 관광객을 주민 한 명이 친절하게 맞이하는 곳이 된다. 명승지 마을이라는 것을 숫자로 쉽게 풀면 그렇다. 그래서일까 리 단위 마을에 기관 단체가 없는 것이 없다. 성산초등학교, 성산파출소, 해경파출소, 우체국, 성산포수협, 성산일출봉 농협 성산포지점, 새마을금고. 눈에 띄는 것은 금융기관이 세 곳이나 있다는 것. 성산리의 경제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각종 선박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해상교통과 어업 요충지이며, 숙박과 음식 같은 관광지 특성을 보여주는 서비스 산업이 번창하는 곳이기에 그러하다.

놀라운 것은, 최고의 명성을 가진 관광지임에도 마을공동체정신이 확고하게 그 자존감을 발휘하며 마을의 미래를 향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현혹될 수 있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었을 것임에도 이를 뿌리치고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야말로 후세의 귀감이 될 것이다.

성산리 임영철 이장에게 마을공동체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불굴의 정신입니다." 뒤이어 차분하게 설명하는 성산리의 역사는 곧 개척사이며 극복의 과정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해수가 날려서 토양은 염분에 잠식되니 곡식 소출량은 기대하기 어렵던 시절, 바다에 의지해 생존의 활로를 찾던 조상들은 배를 타고 파도와 싸우거나 해녀 일을 통해 생활해야 했다. 지금 보이는 관광지의 모습이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는 일은 극복의지로 무장하지 않으면 불가능 했다는 사실. 어떤 시련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무언의 동질감이 성산리 사람들에게는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마인드가 지금도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는 마을 주민들의 공통된 인식.

성산리는 제주의 보배다. 어떤 방향으로 그 보배로움이 발전하느냐 또한 우리의 미래를 가늠 할 수 있는 방향타이기도 하다. 그래서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생진 시인의 시에서 읊은 그대로 우리에겐 '늘 그리운 바다'이기 때문이다. <시각예술가>



자연을 표현한 하얀집

<수채화 79㎝×35㎝>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쭉 뻗은 대나무도 미세하게 휘어져 있는 것처럼. 직선이 만들어내는 효율성은 경제적 가치 때문에, 표준화 된 품목들의 결합이 용이해 각이 진 모습으로 보편화 됐다. 그 반대의 상황, 곡선이나 불규칙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비용과 노동량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이런 집을 바닷가에 지었다는 것은 특수한 목적에 의해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공간에서의 곡선을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성산리에서 미의식이 가장 뛰어난 건물. 자연을 닮으려 했고, 표현하려 노력한 그 귀중한 가치를 그렸다. 우도 도항선 대합실 겸 유람선, 잠수함 매표소 건물. 유명 관광지다운 품격이 느껴진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 요소들을 망라하여 비례에 맞게 구현했으니 건물이기에 앞서서 하나의 예술품을 접하는 기분이다. 구름이 많이 낀 날, 햇살이 없으니 건물에는 명암 구분이 희박하다. 오직 하얀 색으로 칠해진 건물이기에 수채화로 그린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지만 멀리 보이는 일출봉에서부터 근경 바닥, 하늘에 짙은 회색 구름까지 돔형에 가까운 집을 표현하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관광지라면 최소 이정도의 정성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많아야 하겠다는 주장을 그리려 했다. 작위적으로 빼버린 것들과 일부러 집어넣은 요소들이 그림의 맛을 강화하고 있다.



우뭇개에서 해맞이

<연필소묘 79㎝×35㎝>



일출봉 절벽이 얼마나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지 느낄 수 있는 곳. 또한 찬란한 햇살을 눈이 시리도록 담아낼 수 있는 바닷가는 여기다. 연필 하나로 바닷물에 젖은 바위와 거기에서 반사되는 빛까지 표현해야 이런 일출의 시간성을 화면에 가져올 수 있다. 언제였을까? 저 무너져 내린 풍화의 절벽. 혹시, 4·3 당시에 이곳에서 자행됐던 학살 장면을 보고 가슴이 무너지듯 저렇게 아파했을지 모른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기억을 덮으려 하지만 다시 떠오르는 진실의 빛이 모두 드러나게 한다.

새해가 이렇게 밝았다. 모든 사물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닐지언정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이런 아침이 있어서다. 채색의 필요성은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일이지만 물에 젖은 돌과 저 절벽의 윤곽들을 더욱 섬뜩하게 남길 방법은 연필선이 중첩해 공간의 본질을 끄집어낸 이 상황 이상의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겠다. 가령, 컬러사진의 강점도 있겠지만 흑백사진의 장점도 있는 것과 같은 비교를 그림이라는 영역에 대입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거니와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길이라면 끌려갈 만 하다. 만약에 채색을 하게 되면 그림의 제목이 바뀔 것이다, '황금 절벽'이라고. 떠오른 태양이 일출봉 절벽에 금가루를 뿌려 도금을 한 분위기다. 바다에서 반사된 빛이 절벽의 명도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으니 뚜렷한 명암이 그 존재감을 고조시키고, 썰물에서 밀물로 바뀌는 이 시간에 자연의 일부가 된 저기 앞에 큰 돌덩이 하나가 필자다.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880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팟캐스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