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어느 작은 마을에 새겨진 미술관에서의 단상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6. 28(화) 00:00
[한라일보] 지난 5월의 끝자락에 '중광 미술관 건립추진 위원회'의 일원으로 '중광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에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중광 작고 2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회와 은평 한옥마을에 위치한 '셋이서 문학관', 그리고 2022년 입적하시기 전까지 기거했던 '벙어리 절간'까지 중광의 흔적을 따라갔다. 둘째 날은 중광이 선(禪)수행을 했던 백담사와 더불어 강원도 양구의 '군립 박수근 미술관'을 들렀다. 추진 중인 중광 미술관과 규모와 성격이 유사해 참조할 만한 미술관이다.

10여 년 전, 제주건축가회의 건축 답사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건축가들에겐 화가 박수근의 작품보다도 건축가 이종호의 미술관이 더욱 관심거리다. 이 미술관의 탄생 배경은 더욱 감동적이다. 인근의 군부대 외엔 특별한 산업기반이 없었던 양구군은 1997년 박수근(1914년 양구군 정림리 출생)의 미술관을 짓기로 한다. 이는 오롯이 3선을 하셨던 임경순 군수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2000년 당시 신예였던 세 명의 건축가(김종규, 김영준, 이종호)를 초청해 지명 현상 공모가 진행되고 이종호 건축가가 설계자로 낙점된다.

세 명의 건축가 중 어느 분이 설계해도 훌륭한 미술관이 만들어졌겠지만 이종호가 선정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오래전부터 자연에 새겨져 있는 땅의 질서를 존중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이종호의 건축 태도는 수백 번 물감을 덧칠해 그림을 새기는 박수근의 마티에르에 연결된다. 박수근이 캔버스에 그림을 새기듯 이종호는 자연에 건축을 새긴 것이다. 바로 화가 박수근과 건축가 이종호의 통(通)함이다. 건축가에게 이보다 더한 가치는 없다. 그만큼 미술관의 성공 여부는 건축가의 선정이 좌우한다. 이후 이종호는 2009년 제주특별자치도 경관관리 계획 용역의 연구자로서 제주와도 인연을 맺는다.

10년 만에 둘러보는 미술관의 주변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화강석을 쌓아 올려 주변 산의 능선을 이어가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박수근 파빌리온'을 비롯한 몇 동의 건축이 신축돼 문화예술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개관 당시 진품이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후 현대 화랑과 이건희 재단 등의 기증으로 진품을 소장하게 됐다 한다.

우리를 안내하던 도슨트의 눈에는 박수근과 이종호를 향한 경외심이 가득했다. 그 눈빛 뒤로는 아무것도 볼거리가 없었던 양구군이 미술관 하나로 문화예술의 성지로 변모했다는 자긍심이 전해져 왔다.

하나의 미술관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행정의 추진력과 좋은 건축가의 선정에서 시작해 미술계의 지원 그리고 운영자들의 노력이 쌓여야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성공한 미술관의 힘은 도시를 변모시킬 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추진 중인 중광 미술관에 주어진 과제이다! <양건 건축학박사·제주 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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