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4)구좌읍 종달리
산과 바다 모두 아우르는 자연경관의 보고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입력 : 2022. 06. 24(금) 00:00
[한라일보] 눈호강 최종(終) 도달(達)지. 종달리 어느 식당에 낙서된 문구다. 눈호강을 위해서라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벨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일정한 시간 내에 다양한 체험과 제주의 멋을 향유하고자 하는 탐방객들과 숙박을 하면서 여유롭게 휴양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요즘 종달리의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음식점이며 커피와 음료를 파는 점포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느는 것. 바닷가 뿐 만 아니라 마을 안길에서도 관광객들이 삼삼오로 짝을 지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두 세대 전, 제주인들에게 고된 노동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소금밭 종달리의 1950년대를 살았던 분들은 70년 뒤 종달리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세상이 변하니 종달리도 변하지만 마을 이름이 주는 메시지 그대로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발전의 여지와 가능성이 무진장 남아있는 마을이다. 마을 영역의 맨 위에 동검은이오름에서 아래로 손지오름 디디고 용눈이오름, 은월봉을 디뎌서 지미봉을 차고 올라 웅비하는 종달리의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마을 안에 들어서면 우선 포근함을 느낀다. 지미봉이 북쪽을 막아줘서 겨울에도 마을 안길은 바람이 덜하다. 여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조상들의 선택은 이런 위치적인 요인 못지않게 바다와 인접하면서도 경작지를 얻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으리라. 패총 등을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이 곳에 신석기부터 탐라국 후기에 이르는 시기에서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특이한 사실은 토기에서 제주에는 없는 '석영, 장석, 운모'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내지는 외부와 교역이나 교류가 있었던, 항해 능력을 지닌 세력이 살았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섬 제주의 동쪽 끝에서 해류를 타면 효과적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땅이었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지미봉은 원래 하나의 섬이었다고 한다. 서쪽 하도저수지에서부터 남쪽으로 물이 들어오고, 동쪽 마을과 지미봉 사이에도 냇가 폭 만큼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밀물에는 섬처럼 되었다가 썰물에는 육지가 되는 오름이었다는 이야기다. 고대 해양교역 세력에게 있어서 이런 훌륭한 천연요새를 만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유사시에 성곽 밖을 둘러친 해자(垓字)처럼 바닷물이 있어서 방어전을 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후손들이 농경지를 만든다고 매립하고 바다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육지와 가장 가까운 섬을 보유한 마을이 되어 세계인이 찾아올 마을이 되었을 터. 자연을 거스른 안타까움을 후손들이 맛보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만일 지금이라도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지미봉이 아니라 지미섬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가름을 돌다보면 건물들은 소담하면서도 정갈하게 현대식으로 바꿔진 모습들이 대부분이지만 취락구조를 느낄수 있는 마을 안길은 옛 모습을 많은 부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정겹다. 염전으로 쓰던 곳을 논으로 만들어서 사용하던 관계로 바다와 인접한 너른 농토가 큰 공간적 여백을 만들어 폭넓은 시야를 확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엄청난 장점이 생겼다. 빌딩숲에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에겐 안온하면서도 시원한 멋을 주는 이 마을에서의 느낌이 얼마나 큰 만족을 주겠는가.

이러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마을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가 스스로 수익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조상 대대로 가꿔온 마을 터전은 개인 소유 땅이 아니면 마을 공동의 자산이라는 의식이 제주인을 지배하는 문화다. 해변 공간 또한 종달리의 역사가 서린 마을사람들의 공유하는 자산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공유수면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소유다. 마을에서 이를 활용하여 수익사업을 펼칠수 없는 구조. 해변 자체가 국유지이기 때문에 마을공동체는 어떠한 사업도 할 수 없다는 한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마을 젊은이들은 분개하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형국에서 행복추구권은 구호에 불과하냐는 것이다. 특별자치도 다운 특별한 개선책이 요구되는 해변마을들의 현실을 종달리 바닷가에서 만난다.

<시각예술가>

서동정미소 주변 풍경
<수채화 79cm×35cm>

하지의 햇살이 바쁘게 지나가는 솜털구름 사이로 내리쬐자 눈이 부시다. 그릴 것이 넘쳐나는 마을에서 유독 서동정미소를 찾은 것은 포근한 지미봉 품속에서 이웃이라는 평화의 공간을 구축한 마을 모습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제주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정미소라는 사실. 82세 오정식 사장님이 운영하는 1인 기업. 6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정정한 활동력을 가지고 오늘도 곡식을 기계에 넣고 숙련된 기술로 곡식을 용도에 맞게 가공하고 있다.

외삼촌이 30년 가까이 하던 정미소를 인수해 50년을 이어온 작업이니 마을 입장에서는 80년을 서동정미소 기계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소금밭 시절에서부터 논으로 바꿔서 벼농사를 짓게 되는 격동의 과정을 함께 해온 서동정미소.

1940년부터 3세대 가까운 세월, 농경지 곡물에서 밥상 사이의 과정을 책임져온 토종기업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몇 해 전에 들렸을 때는 아주 오래된 디젤엔진 정미소 기계였는데 소음이 적은 전기모터로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정미소 앞에 없던 건물이 생겨서 반가웠다. 기와정자다. 사장님이 작업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정성을 들여 그리게 된다.

염전을 논으로 만들어 벼를 심었지만 처음에는 실패하고 10년 뒤에 우연히 재도전을 하여 벼 수확에 성공했을 때, 저 서동정미소에서 쌀을 맞이하던 그 기쁨은 세상 무엇으로 견줄 수 있으랴. 정미소 사장님이 더 신바람이 났었을 것이다.

평화로운 종달리 해변
<수채화 79cm×35cm>

가끔이지만 육풍에서 해풍으로 바뀌거나, 바람 방향이 바뀌는 잠시 동안 이 곳 바다는 호수에 가까울 정도로 파도가 사라진다. 팔을 뻗어 감싼 해변지형의 영향으로 너울파도가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리 우도가 보이지 않으면 누가 바닷가라고 하겠는가.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엔 여기서 두 개의 초록이 만난다. 하나는 흙이 만들어내는 초록이며 또 하나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초록이다. 풀잎들과 파래가 육지와 바다를 대표해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 청명한 파란 하늘이 있는 날에는 청록색으로 풍경을 지배하는 곳이다.

원경은 현실 속을 그려야 하는 풍경 속에 상상화의 요소를 투입했다. 있는 것을 고의적으로 모두 뽑아 버렸으니, 있는 것을 없애는 것 또한 상상의 영역. 전봇대를 모두 철거(?)해버렸다. 이 아름다운 해변에, 자연이 주는 행복한 풍경에 가시들이 박힌 느낌이라서 그런 것이다. 의도적이다. 목적을 가진 의도를 그림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다. 전신주 없는 지중화 시범마을로 종달리 해안도로 일대를 지정해주기를 바라는 '풍경화 청원'이다. 멀리 우도와 일출봉이 보이는 엄청난 가치를 보유한 경관. 그 아름다운 자연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풍경화를 통해 마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감히 그림을 통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바다와 평화로운 해안선 속에서 진정 시각적 힐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전신주 없는 이런 풍경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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