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섬에서 강물소리를 보기
김채현 수습기자 hakch@ihalla.com입력 : 2022. 05. 24(화) 00:00
미술관으로 오는 우편물은 대개 전시홍보 엽서고, 택배는 전시도록이다. 엽서도 도록도 일반 엽서나 책보다 판형이 크다.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홍보물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평소 받는 사이즈와는 다른 모양의 택배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단행본이 3권 쌓여 판형은 작고 높이가 두툼한 부피감을 가진 덩어리의 포장을 뜯으니 섬진강변에서 출발해 제주로 도착한 김탁환 선생님의 신작 '섬진강 일기'가 들어 있었다. "강물소리를 보여드릴게요!"라고 적어 섬진강변 곡성에서 4월 19일자로 사인해 보내주신 책을 4월 25일에 제주에서 받아서, 쉬엄쉬엄 글과 강의 리듬에 맞춰 책장을 넘기다보니 5월 3일에 다 읽었다. 10년 남짓 늘 원고를 쓴 뒤에 제주를 걷던 소설가는 이제 섬진강변을 걸으며 쓰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강물소리가 보이는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더니, 섬진강 나들이를 청하시며 제주도가 그립다셨다.

2021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일기.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기고, 글을 읽고 쓰고, 농사하고, 책방을 만들어간 한 해의 이야기를 일주일만에 읽는 건 참 빠르고 쉬운 일이었다. 쓰는 일에 비해 읽는 일은 어찌 이리 간단한지. 장편소설을 쓰는 이의 고됨이 책장과 행간마다 전해져서, 한결 더 읽는 일의 쉬움에, 쓰는 이의 고단함에 공감했다. 제주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섬진강 여행을 수월하게 다녀온 게 감사해, 쓰는 일로 보답해야겠다 싶어 이렇게 제주바다 변에서 글을 남긴다.

책 표지에도 쓰인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이란 표현따라 과연 이 책은 매일매일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기록이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모내기를 할 것이다, 글을 쓰려 했으나 들로 나간다거나 등등. 개인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한반도 다른 지역의 사정이다. 특히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지역들은 모두 한 번도 지나보지 못한 곳들이다. 논도 낯설다. 매일 밥을 먹지만, 그 쌀이 어떻게 재배되어 내 밥상 위에 오르는지는 막연한 상상을 할 기본지식조차 부족하기만 하다. 그와 반대로 귤이 어떻게 자라고, 어느 시기에 어떤 종류의 귤이 나오는지는 귤농사는 짓지 않지만 대충은 알겠다. 논과 함께 농사짓는 일상과 더불어 소설가는 내게 노을녘에 자전거로 강변을 달려 퇴근하는 그림도 보여주었지만, 내가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문장은 창이 많아 빛이 잘 드는 집필실을 묘사한 것이다. "왼쪽 어깨에 빛이 닿으면 아침이구나 느끼고, 오른쪽 팔꿈치에 빛이 앉으면 저녁이 다 되었구나 깨닫는, 이 삶이 좋다. 겨울빛과 봄빛과 여름빛과 가을빛의 차이도 집필실에서 서서히 느끼겠지.(92p)" 섬진강변의 빛이 내 왼쪽 어깨에서 서서히 오른쪽 팔꿈치로 가닿는 것처럼 금세 따듯해졌다. 강물소리에 덤으로 강물빛까지 선물해주셨다.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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