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서귀포의 틈, 예술이 스며들 수 있는 자리
작성 : 2025년 07월 22일(화) 05:30
[한라일보] 한때 규슈 올레길을 걸었다. 제주에서 비롯된 길이 일본의 들판과 해안을 따라 뻗어나간 풍경 속에서, 제주가 만든 문화를 타지에 심었다는 자부심을 분명하게 느꼈다. 요즘의 나는, 무엇인가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만큼, 그 빈자리에 '누군가를 들여오는' 감각에 더 끌린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고요한 여백, 그 자리에 새로운 감각과 시선을 초대할 수는 없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예술 축제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는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이식되었다. '차오산의 예술-광둥 난하이 랜드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에 시작해 2024년 두 번째 장을 열었다. 총감독 프람 키타가와는 자문위원으로 함께했고, 아사이 유스케, 레안드로 에를리히, 마츠모토 아키노리 등 에치고의 작가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한때 일본 니가타현의 산골에 방치된 집을 중일 문화 교류의 거점인 '화위안'으로 바꾼 이들이기도 하다. 그 오래된 집 한 채에서 시작된 감각의 연결은, 하나의 축제이자 살아 숨 쉬는 문화적 대화로 이어졌다.
이 느린 혁명이 제주, 그중에서도 서귀포에서도 가능할거라 생각한다. 이제 막 자신이 어떤 도시가 될 수 있는지를 자각하기 시작한 서귀포는 예술이 스며들 여백을 품고 있는 땅이다. 올레길이 사람들을 걷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예술이 그들을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산과 바다, 돌담과 창고, 귤나무와 안개-모든 것이 제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도시는 아직 다 써지지 않았고, 바로 그 점이 서귀포의 가장 큰 가능성이다.
많은 이들이 '나오시마'를 말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앞선 실험인 에치고-츠마리를 떠올린다. 버려진 논과 폐교, 산길과 개울가,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노인들의 삶을 전시장으로 만든 조용한 전환. 그곳에서 예술은 삶과 구분되지 않는다. 제주가 지금 배워야 할 감각은 바로 그곳에 있다. 예술을 '가져오는' 일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타자의 감각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질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치고-츠마리를 단순히 가져오는 게 아니라, 에치고-츠마리의 태도를 가져오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예술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다. 그리고 서귀포는 그 느림의 미학을 감당할 수 있는 드문 장소다. 누군가가 이곳에 머물고, 천천히 걷고, 지역의 손을 잡으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작은 전환이 제주의 예술 생태를 다시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서귀포의 돌담 옆, 작고 낯선 전시장에서 먼 나라의 작가와 말을 나누는 일-그 조용한 교류가 축제가 되고 제도의 전환이 될 수 있다면, 예술은 더 이상 수출이나 수입이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언제나 느리고, 조용하다. 하지만 가장 깊은 물줄기는 언제나 가장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땅을 지나간다. 나는 그 물줄기가 서귀포를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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