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야구인 이광환 감독, 제주에 뿌린 꿈과 유산
―한국 야구계의 거목 제주에 심은 뿌리 깊은 족적을 돌아보다
작성 : 2025년 07월 04일(금) 17:47
[한라일보] 한국 야구의 큰 어른이자 제주 야구 문화의 숨은 주춧돌, 이광환 전 감독(향년 77)이 지난 7월 2일 제주도내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는 OB, LG, 한화, 히어로즈 등 4개 구단을 지휘한 프로야구계의 산증인이자, 서울올림픽 시범야구 지도와 1994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명장이었다.

그는 1970년대 군 제대 후 친구 정진구와 전국 배낭여행에 나섰고, 부산항에서 제주로 건너온 뒤 무전여행을 하며 마을회관과 성당 처마 밑에서 지냈다. 이 경험은 "사람의 따뜻함을 배운 시간"으로 기억됐고, 제주는 그의 제2의 고향이자 인생의 방향을 바꾼 곳이 되었다.

그가 제주에서 남긴 가장 크고도 조용한 유산은 바로 야구 문화의 씨앗을 심은 일이다. 1990년대 말, 서귀포시에 '야구인의 마을'을 조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고, 1998년에는 개인 소장 야구 관련 자료 3000여 점을 기증하며 제주 최초의 야구박물관(한국야구명예전당) 설립을 이끌었다.

또한 2005년 서귀포 강창학체육공원 내 야구장 조성 자문에도 참여하며 지역 인프라 구축에 기여했고, 2007년에는 제주 최초의 여자야구단 '이명아명'의 명예감독을 맡아 여성 야구 저변 확대에도 힘을 보탰다.

그의 활동은 경기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스쿨존에서 교통지킴이로 봉사했고, 찾아가는 티볼 교실 강사로서 아이들에게 배트를 쥐어주는 일에도 앞장섰다.

생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는 데까지 건강하게 살고, 내 묘는 은행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하고 싶다." 서귀포 야구장 인근의 은행나무는 그의 소망이자, 그가 제주에 뿌린 헌신의 상징이 되었다.

이광환 감독과의 인연은 1991년 필자가 제주도야구협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필자가 제주도야구연합회장을 맡았던 시절에는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단지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야구를 통해 사람을 잇고 지역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이었다. 그의 발자취는 인프라와 박물관, 그리고 사람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약속을 이어가야 한다. 그가 제주에 심은 '은행나무 한 그루'는, 여전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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