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자유·통제의 경계… 여권의 기묘한 힘
패트릭 빅스비의 『여행 면허』
작성 : 2025년 07월 03일(목) 20:30
[한라일보] 여행면허, '여권'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영어학 교수인 패트릭 빅스비가 펴낸 '여행 면허'는 고대 유물부터 문학 작품과 저술, 편지, 영화와 무용, 회화와 현대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기록들을 훑어보며 여권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 책은 현대식 여권의 등장 이전 시대와 현대식 여권의 등장, 현대식 여권의 시대 등 총 3부로 나눠 인간의 이동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여권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국제적인 신원 확인증인 여권은 '안전 통행 편지'의 형태로 시작됐다.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는 '여행 서류' 역할을 했다. 이후 그 형태는 점점 발전해 나갔다. 여행허가서, 표준여권, 전자여권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의 신원에 점점 밀접해지는 방향으로 강화돼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여권이 개인이 가진 이동의 자유를 실현하는 도구이자,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 도구라는 경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이에 국경을 넘나드는 데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이들 중 누군가는 여권을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허점을 파고들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면 돌파하기도 하며 성공과 실패라는 기로에 서기도 했다.

그 사례는 이렇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무국적자로 출국비자 없이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그와 동등한 입장의 유대계 독일인인 해나 아렌트는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뉴욕행 여객선에 올랐다. 파블로 네루다는 생존을 위해 생김새가 비슷한 친구에게서 빌린 여권으로 파리까지 도망쳤고, 레온 트로츠키는 위조 여권을 이용해 잠입한 비밀요원 때문에 멕시코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나 미국의 민권 운동가이자 가수인 폴 로브슨은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저항하다 여권을 빼앗겨 국내에 발이 묶이기도 했다.

또 이러한 부분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1988년 여권을 도난당한 뒤로 18년 넘게 샤를 드골 공항의 1번 터미널에서 살아온 이란 난민의 실화에 기초한 영화 '터미널'은 본국 정부가 무너지면서 여권이 무효화돼 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돼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처럼 여권은 어떤 여행자에게는 번거롭고 불편하고 악몽도 경험하게 하는 것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유용하다. 저자는 "여권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정확히 통제하는 기묘한 힘이 있다"며 "여권의 문화사를 탐구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동성의 약속, 감정의 구조, 국가권력의 도구에 관한 중대한 뭔가를 헤아리게 된다"고 전한다. 박중서 옮김. 작가정신. 2만2000원.

박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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