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는 구이, 보목은 회… 입맛 따라 각양각색보목 자리돔 축제 오늘 개막… 즐길거리도 풍성
[한라일보] 그리도 춥던 겨울이 끝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이따금씩 찾아오던 꽃샘추위를 지나, 만춘(滿春)이 찾아왔다.
따스함은 그간 고생해 온 도민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는 것 마냥 친구를 데려왔으니 작지만 알찬 생선 '자리돔'이다. 어느덧 자리돔의 제철이 돌아왔다.
제주 하면 생각나는 생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옥돔, 멸치, 갈치, 각재기…. 저마다 사연 많고 맛과 개성이 뚜렷한 생선들이다. 그중 유독 제주에서 사랑받아왔으며 서민들의 생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자리돔이다.
중앙정치에서 소외받아 온 제주와 궤를 함께하기라도 하는 듯, 자리돔은 고문헌에 그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다만 조선 중종 때 작성된 '제주풍토록'(1519)에 "잡어들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육지 사람들이 보기에 생소한 자리돔이 이 잡어에 포함됐을 것이라 추측될 뿐이다.
자리돔에 대한 기록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나온다.
'한국수산지'(1910)는 당시 제주 전역에 자리돔 그물망이 282망이나 돼, 자리돔잡이가 성행했음을 알려준다.
제주학자 석주명 선생이 쓴 '제주도수필'(1949)은 도민들과 자리돔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 책은 "해변에서 자리회에 소주를 먹는 것이 최상의 행락"이라고 밝힌다. 또 보리, 조, 미역과 더불어 자리돔을 제주의 주식이라고 말한다. 자리돔은 도민들의 주식이자 취미 그 자체인 '소울 푸드'라고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l 5~7월 제철… 초보 낚시꾼에게도 딱
자리돔의 제철은 5~7월이다. 추워야 제맛이라는 다른 횟감들이랑 다르게 더울 때가 제철이라니, 독특하면서도 의아해진다. 이는 자리돔의 산란기와 뼈에 그 이유가 있다.
자리돔은 수온이 10℃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에도 살아갈 만큼 적응력이 좋지만, 난류를 좋아하는 아열대성 어류다. 그렇기에 수온이 20℃ 전후로 따듯해질 무렵 산란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자리돔은 살이 오르고, 만삭의 사람이 그렇듯 뼈가 약해진다. 워낙 작은 생선이라 뼈째 썰어 회로 즐겨왔기에 산란기가 곧 제철인 것이다.
자리돔은 초보 낚시꾼에게도 좋은 낚시감이다. 미끼로는 주로 작은 크릴새우가 사용된다. 밑밥만 뿌려둬도 곧 그 주변이 자리돔 떼로 시커메진다. 바늘을 여러 개 달아놓은 목줄을 사용하면 한 번에 두세 마리가 달려오는 것이 다반사다.
낚시 포인트로는 제주시 세화포구와 서귀포시 신도리~영락리 일대가 꼽히기도 하는데, 사실 제주 전역의 어디를 가든 잘 잡히니 포인트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낚시를 떠나 자리돔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서귀포시의 모슬포와 보목 일대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l 탱탱한 모슬포 자리돔, 부드러운 보목 자리돔
제철에 모슬포항과 보목포구에 가면 어선들이 자리돔을 잔뜩 싣고 돌아와, 삼춘들이 그 자리에서 직거래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일대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면 갓 잡은 자리돔의 싱싱하고도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두 명산지의 자리돔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바람과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모슬포에 사는 자리돔은 그에 맞춰 크고 뼈가 굵다. 살이 탱탱해 구이나 조림으로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다가 잔잔하기로 유명한 보목에 사는 자리돔은 작고 뼈가 연한 것이 특징이다. 부드러워 뼈째 썰어 물회나 무침으로 먹기 제격이다.
같은 서귀포에서 잡힌 자리돔이 이리도 차이 난다는 점을 두고 혹자는 "돌담 하나 차이로 맛이 달라지는 프랑스 와인의 조화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
'모슬포냐 보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취향 차이인 자리돔을 두고 우열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그저 둘 다 찾아가 모두 맛보면 그만이다.
때마침 온 가족이 제철의 자리돔을 즐기러 가기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오늘부터 18일까지 보목포구 일원에서 '제21회 보목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손주 손잡고 오는 축제'를 주제로 한 이번 축제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풍성한 내용을 담았다. ▷자리돔 먹거리 제공 ▷테우사들당기기(노젓기) 시연 ▷세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을 주요 테마로 한다. 신선한 자리돔 음식을 한 그릇에 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으며, 자리돔에 낯선 어린이들을 위한 '돈가스 덮은 자리' 메뉴도 선보인다.
주요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돔 맨손잡기 ▷왕보말·뿔소라 잡기 ▷고망낚시 ▷카약 체험 등이 마련돼 어린이들이 보목의 바다를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비짓제주'(https://www.visitjeju.net/kr)의 '보목자리돔축제'를 참고하면 된다.
보목에서 충분히 즐기고서 '모슬포의 자리돔은 어떨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이동한다면 작은 자리돔으로 하루를 풍성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자리돔의 이름은 죽을 때까지 태어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기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항상 자리를 지키며 환경에 맞춰, 드세지기도 연해지기도 하는 자리돔. 이 생선은 우리 도민들과 지독히도 닮아 있기에 애틋한 동질감마저 든다. 제철을 맞이한 지금, 자리돔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제주의 서사를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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